은으로 빚은 식기(食器)를 통해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게 만드는 전시

입력 2024-11-20 09:44
수정 2024-11-20 09:45


죽은 이의 소장품을 보관하는 '유물함'은 인간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여주는 물건이다. 작은 작품을 통해서 관객은 삶과 죽음이 세상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은 작업을 선보이는 공예가 김영옥이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전시를 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호호재서울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 '오늘과 내일'이다.

'손으로 만든 솜씨'라고 불리는 공예에서도 김영옥은 유독 은이라는 재료에 집중했다. 전통적 기법을 사용해 사람들이 일상에서 실제로 쓸 수 있는 작업물을 만들어낸다. 주전자, 접시, 찻잔 등 그가 만드는 작품 대부분이 음식과 음료를 담는 기물들이다. 은은 불순물이 없고 향균 효과가 있기 때문에 식기로 유용하게 쓰이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김영옥은 단조기법을 사용해 '완벽한 형태의 주전자'를 제작해 전시에 내놨다. 모양이 대칭을 이루고, 어느 부분도 흐트러짐없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여기에 자연의 일부분을 장식적 요소로 삼았다. 쓰는 사용자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주전자를 통해 여유와 친근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다도'를 애정하는 작가인 그에게 주전자는 더욱 중요한 기물이다. 김영옥은 다도를 통해 자연과 인간, 삶의 조화를 추구한다. 특히 그는 인간이 찻잎을 다루고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려내는 과정을 통해 비인간적 존재, 자연과 연결된다고 믿는다.

전시가 이뤄지는 호호재서울의 1층은 ‘죽음의 미학’이라는 주제로 꾸며졌다. 인간의 근본적 소멸을 작품으로 풀어낸다. 세상에 태어났다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이치를 공예로 형상화했다. 위로 올라가면 '생명의 미학'이 펼쳐진다. 생태적 존재인 인간과 자연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상호 보완관계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김영옥의 철학이 드러난다.

그는 전시를 통해 인간이 식기와 음식을 소비하는 것이 생태적 책임의 일환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먹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환경과 생태계, 자연의 순환 속에 있음을 느끼고 삶의 가치를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