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애인이랑 연락할 때 썼던 삐삐네.”
19일 서울 구로동 G밸리산업박물관을 찾은 한 50대 여성이 진열장에 전시된 무선호출기(삐삐)를 보며 이같이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들과 함께 전시회에 온 40대 김모씨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모토로라 이동식 전화기를 가리키며 “벽돌처럼 생겨서 ‘벽돌폰’이라고 불렀지”라고 했다.
삐삐, 카폰, 스마트폰까지 당대 유행한 무선통신 기기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가 인기를 끌고 있다. 무선통신 기술의 원리와 작동방식을 알기 쉽게 가르쳐줄 뿐만 아니라 세대 간 추억을 나누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다.
박물관과 과학관의 첫 협업서울시는 내년 3월까지 구로동 G밸리산업박물관에서 국내 무선통신 산업 발전 60년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무선통신, 일상을 만들다’ 특별기획전을 연다고 밝혔다. G밸리산업박물관은 옛 구로정수장 부지 개발사업으로 세운 G타워에 한국산업단지공단과 넷마블이 공공기여한 공간이다. 2021년 9월 개관 이후 마련된 다섯 번의 기획전에선 구로공단의 역사 등 주로 서울의 산업 발전을 다뤘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박물관과 과학관의 국내 첫 협업 사례로 꼽힌다. G밸리산업박물관과 서울시립과학관은 산업과 과학기술의 연계 지점을 고민하다 무선통신 기술의 발달사를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를 다 보고 나면 1961년 인구 100인당 전화 보급률이 0.4대에 불과하던 나라가 60년 만에 첨단 스마트폰 연구생산 기지로 거듭난 비결을 짐작해볼 수 있게 된다. 올림픽이 만든 통신 강국
전시는 3부로 나뉜다. 박정희 정부가 1960년대 초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통신사업 5개년 계획’을 시행하면서 통신 강국으로 가는 첫걸음을 뗐다는 설명과 함께 1부 ‘무선통신을 알다’가 시작된다. 2부 ‘무선통신 생활의 도구가 되다’에선 여러 유형의 통신 기기가 소개된다.
1980년대 차량 내부에 부착돼 이동 중 통화하던 카폰, 1990년대 후반까지 인기를 누린 삐삐, 국내 초기 컬러TV ‘금성 CR-840K’ 등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휴대폰과 폴더폰, 최신 스마트폰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 3부에선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비약적으로 발전한 국내 방송·통신 기술을 집중 조명한다. 전시 기획에 참여한 오윤정 학예연구사는 “88 서울올림픽은 한국 통신의 일대 전환점이었다”며 “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1981년 이후 무선 통신 인프라가 전국 각지에 빠르게 구축됐고 우수한 통신 인력도 배출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로부터 30년 뒤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선 세계 최초의 5세대(5G) 서비스를 공개하는 등 통신 강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의 위상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박물관 측은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관람을 권하고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기술 변화 양상을 배우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학생들이 미래 통신 기술까지 상상해볼 수 있도록 전시회를 꾸몄다”고 했다. 박물관은 기획전과 연계한 체험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구로로 탐정’ 캐릭터를 활용해 전시를 관람하면서 미션을 해결해 나가는 ‘구로로 탐정과 무선통신의 비밀’이 전시 기간에 상시 운영된다.
내년 3월 15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과 일요일은 휴관한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