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동 칼럼] 이토록 허술한 상속세 개편 논의

입력 2024-11-19 17:39
수정 2024-11-20 00:12
2020년 총선에서 절반을 훌쩍 넘긴 더불어민주당이 2022년 대선에서 패배한 데는 부동산 실정(失政) 영향이 컸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2배 오르는 등 집값이 뛰자 곳곳에서 불만이 쏟아졌다. 집 없는 사람은 내 집 마련이 힘들어서, 집 가진 사람은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가 급증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종부세 부담을 낮추는 개정안이 윤석열 정부 첫해 여야 합의로 바로 통과된 것은 이 때문이다.

집값 급등의 여파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을 뿐인데 상속세를 물게 되자 울화통을 터트리는 중산층이 늘기 시작했다. 현행 상속세는 일괄공제(5억원)와 배우자공제(5억~30억원)를 제한 후 부과되는데,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2억4000만원(9월 기준)에 이르러 아파트를 소유한 두 집 중 한 집이 상속세 대상이 됐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공제 한도는 1997년 이후, 과표와 세율은 1999년 이후 그대로인 여파다.

정부와 여당은 올 들어 중산층 부담을 낮추고 대주주의 경우 할증 포함 세율이 60%에 이르는 가혹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지난 7월 세법 개정안을 내놓았고 민주당도 곧이어 나름의 안을 제시했다. 정부안의 골자는 자녀 1인당 공제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 최고 세율 50%에서 40%로 인하, 대주주 20% 할증 폐지 등이다. 민주당의 임광현 의원안은 일괄공제 8억원·배우자공제 10억원 상향, 최고 세율 및 할증 과세 유지가 핵심이다.

정부안이나 야당안이나 상속세 부담을 낮추는 쪽이어서 반갑지만 상속세 철학이나 원칙을 깊이 고민했는지는 의문이다. 우선 배우자에게 상속세를 물리는 게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 제기에 답이 없다. 외국을 보자. 미국 상속제도엔 ‘무제한 배우자 공제’(unlimited marital deduction) 조항이 있다. 배우자는 상속세를 한 푼도 안 내도 된다는 의미다. 증여 때도 마찬가지다. 부부 재산은 공동 재산이며 상속세는 재산이 부모 세대에서 자녀 세대로 넘어갈 때 매기는 세금이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모두 마찬가지다. 일본도 법정 상속분까지 전액 공제한다.

배우자에게 상속세를 과세하는 것은 이혼으로 재산을 분할할 때 세금을 내지 않는 것과도 배치된다. 이와 관련한 2016년 대법원 판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0년 넘게 결혼생활을 유지하다가 합의 이혼하면서 재산을 50억원 받았는데 7개월 뒤 배우자가 사망하자 세무당국은 증여세(사후엔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한 위장 이혼이라고 보고 과세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합의 이혼 자체를 중시해 과세 무효 판결을 내렸다. 고령자에게 이혼이 경제적 측면에서 유리하니 고민해 보라고 하는 게 지금 우리 사회다.

민주당이 대주주 20% 할증 폐지를 개정안에 담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상속세는 그 자체가 이미 누진세 구조인데, 여기에 대주주 할증까지 더한 것은 징벌 외 다른 의미를 찾기 힘들다. 다른 나라엔 없는 징벌이다. 한국에선 상속을 두 번만 하면 지분율이 100%에서 16%로 떨어진다. 정부가 물납받은 주식을 못 팔면 대주주가 된다. 대주주 할증을 폐지하는 것은 이 같은 비정상을 바로잡는 것일 뿐이다. 야당이 부자 감세라고 모는 것은 왜곡이다.

정부가 유산세 체계를 유산취득세 체계로 전환해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아무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도 아쉽다. 내년 이후 한다지만 가 봐야 안다. 세법은 고치기가 쉽지 않다. 그 때문에 한 번 고칠 때 제대로 바꿔야 한다. 국회는 지금부터라도 치밀한 논의를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