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가속화하면서 농작물 생산 감소와 수급 불균형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폭염·폭우 등 이상기후와 잦아진 자연재해로 전통 농업 방식의 한계가 뚜렷해지고 있다. 여기에 농촌 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 농지 생산성 저하가 맞물리며 식량 안보를 위협받는 상황에 내몰렸다. 국내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 웃돈을 주고 수입해야 한다. 2021년 요소수 대란 같은 일이 앞으로 농산물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스마트팜이 미래 농업의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이 비교우위를 지닌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면 전통 농업도 예측 가능한 첨단산업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경제신문이 노지 농사 현장, 스마트팜을 찾아 국내 농업이 처한 현실과 해법을 모색해봤다.
“마늘 주산지가 기후위기로 완전히 뒤바뀌고 있습니다.”
충북 보은에서 40년 가까이 마늘 농사를 짓는 임영민 씨(61)는 “가을 폭염으로 전남 고흥, 경북 의성, 경남 창녕 등 남부 주산지에서 마늘을 짓기에 적합한 노지(맨땅)가 줄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임씨는 “올해는 이례적인 10월 폭우로 파종 시기를 놓친 마늘 농가가 많다”며 “내년 국산 마늘값은 출렁일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인근 마늘밭에서 농사를 짓는 양세연 씨(64)는 추석 직후 내린 가을비를 뚫고 무리해 파종한 것을 ‘천운’이라고 회상했다. 마늘은 파종에 앞서 노지를 갈고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하는데, 땅의 수분이 적어야 경작할 터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마늘은 땅이 너무 건조해도 생육에 영향을 받으며 이상기후에 취약한 작물이다. 양씨는 “이례적인 추석 더위에 마늘 농가 대부분이 파종을 주저하다가 연이은 강우에 시기를 놓쳤다”며 “우리도 예년보다 파종이 보름 정도 늦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마늘을 재배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가 경남 의령에서 충청으로 바뀌었는데 일기예보도 들어맞지 않는 이상기후 때문에 농사짓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여름(6∼8월) 전국 평균 기온은 25.6도로 전국적으로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시간당 100㎜ 이상 강한 비가 16번이나 내려 2010년 이후 가장 잦았고, 9월 강수량도 평년 대비 155%나 됐다. 극심한 기후변화 탓에 농산물 가격은 치솟았다. 지난 9월 말 전국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오이 가격은 평균 10개당 1만4994원으로 평년보다 30.76% 비쌌다. 배추 한 포기 가격은 9월 27일 평년보다 70% 높은 9963원까지 올랐다.
식량 작물과 채소를 재배하는 노지 면적도 줄어드는 추세다. 식량 재배 노지 면적은 올해 89만2564헥타르(㏊)다. 2015년 100만㏊ 선이 무너진 이후 9년간 전체 노지 면적의 약 10%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채소를 재배하는 노지 면적도 지난해 기준 18만6298㏊로 역대 가장 작았다. 한 영농조합 관계자는 “배추와 마늘, 벼 등은 여전히 국내 노지에서 생산해 소비하는 사례가 많다”며 “줄어드는 노지 면적과 농업 인구가 서로 맞물리면서 악순환이 심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충남 보령 '오이 스마트팜'…"AI, 실시간으로 최적환경 조성
생육속도 높여 연 120만개 생산"…안정적 수확으로 식량안보 도움
지난 11일 충남 보령시 청라면에 있는 그린몬스터즈 스마트팜. 오이 농사를 짓는 이곳은 30대 청년 서원상 대표가 운영하는 유리온실이다. 온실 내부에 들어서자 천장에 달린 노즐에서 수증기가 흩뿌려졌다. 오이꽃이 가장 잘 생육할 수 있는 환경인 습도 65%를 맞추기 위해 습도가 64%로 떨어질 때마다 시스템이 스스로 작동한다. 기온이 올라가면 천장이 열리면서 더운 공기를 배출해 온도를 조절한다.
이 회사는 60m 길이의 33개 줄에 심어진 오이를 20일마다 수확한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오이는 1년에 120만 개. 2021년부터 스마트팜을 운영한 서 대표는 “일반 농지에서는 30일에 한 번 오이를 수확하지만 이곳에서는 20일에 한 번 거둬 생산 효율이 높다”며 “올여름 무더위 때문에 노지에서는 오이가 잘 자라지 않았는데 스마트팜에선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확했다”고 말했다.
스마트팜은 맞춤형 재배가 가능하다. 토마토 1㎏을 생산하는 데 노지에서는 물이 60L 필요하지만 스마트팜에서는 4L면 충분하다. 나무를 심은 부분에 집중적으로 물을 주면 되기 때문이다. 비 오거나 흐린 날씨가 이어질 땐 곳곳에 달린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햇빛을 대신한다. 온실 밖에서는 대형 모니터가 내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기후위기가 현실화하면서 반복적으로 주요 농산물 수급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날씨, 노동력 감소 등 외부 환경 요인에 상관없이 예측 가능한 농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스마트팜이 현재 위기를 타개할 대안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국내 스마트 농업은 아직 초읽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농가의 스마트팜 도입 면적은 지난해 기준 7716헥타르(㏊)로 전체 시설원예 면적 5만5000㏊의 14.0%에 불과하다. 해당 면적은 5년 새 57% 넓어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지금 남아도는 쌀도 국내 생산지의 아열대화가 심해지면 가까운 미래에 생산량이 급감할 수 있다”며 “식량 안보를 위한 최선의 대응책으로 스마트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보은=원종환/이광식 기자/보령=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