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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 증권사의 해외 법인은 단순한 현지 주식 거래 중개소(브로커리지)를 넘어섭니다. 새로운 금융상품을 찾아 국내에 들여오거나, 이전엔 생각도 못했던 딜(거래)을 맡아 주관하기도 해요. 앞으로는 해외 법인을 통한 매출이 더욱 늘어날 겁니다.”
주명 한국투자증권 홍콩법인장은 지난 12일 한국투자증권 홍콩 현지법인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은 글로벌 금융기관의 아시아본부가 밀집해 있는 '홍콩의 월가' 센트럴지역에 홍콩법인을 두고 있다. 직원 약 40명 중 절반 가량이 현지에서 채용한 외국인이다. 주 법인장은 “본사의 파견 사무소에 가까웠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모든 비즈니스가 현지 위주로 돌아간다”며 “현지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어깨를 맞대고 영업한다”고 설명했다.
주 법인장은 “최근 몇년 새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했다. 한국투자증권 홍콩법인은 지난 4년간 규모가 여덟배가량 커졌다. 현지 법인을 세운 1997년 말부터 2020년 초까지는 사실상 한국 투자자가 홍콩 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중개하는 게 업무의 전부였다. 직원 수도 한 손에 꼽았다.
하지만 요즘은 180도 달라졌다. 한국투자증권 홍콩법인은 2020년 5월 투자은행(IB) 업무를 개시한 이래 사업 전방위 확장에 나서고 있다. 주 법인장도 IB팀 출범 당시 미래에셋증권에서 스카우트 된 인물이다. 작년 말부터 홍콩법인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작년 말 기준으로 홍콩법인이 매출을 내는 사업이 IB 40%, 채권트레이딩 20%, 브로커리지 20%, 기타 10%로 다각화됐다”며 “지난 3월부터는 아시아 발행사 대상 하이일드 채권 주선과 마켓메이킹(MM) 업무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자기자본도 확 키웠다. 골드만삭스 등 유명 글로벌 IB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외 발자취가 부족한 만큼 ‘브랜드 파워’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투자증권 홍콩법인의 자기자본은 6607억원, 당기순이익은 369억원이었다. 자체 자금으로 블랙스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 글로벌 사모펀드(PEF)에 출자를 해뒀다.
주 법인장은 “자기자본을 바탕으로 글로벌 금융사의 펀드에 투자할 수 있으면 그만큼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고, 향후 좋은 딜을 확보할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며 “이를 통해 트랙레코드(운용 실적)를 쌓아 딜 소싱이 더 원활해지는 선순환을 노리고 있다”고 했다.
“‘투자사 겸 증권사’ 전략은 충분히 효과가 있습니다. 예전엔 사업이 궁해 딜을 하나라도 더 받아오려고 무작정 거리를 나섰지만 이젠 선택지가 많아져서 어떤 딜에 참여할 건지 고민할 수 있는 수준이 됐으니까요. 딜을 선별할 수 있게 되니 투자 위험도도 낮아졌습니다.”
최근 홍콩 금융시장이 일부 재편되면서 생긴 빈자리 공략에도 힘쓰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CS)가 UBS에 인수되면서 시장에 나온 주요 인력을 작년 말 영입해 채권자본시장(DCM) 사업을 키운 게 대표적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올초 2억2500만달러(약 3140억원) 규모로 몽골 국채 주택금융기관(MIK) 달러채 발행을 주관했다. 국내 증권사가 몽골 국책기관 채권 발행을 주관한 최초 사례다.
주 대표는 “아시아 채권을 오랜 기간 담당해 몽골 현지와 관계가 깊은 전문가를 영입한 덕에 아예 신규 시장을 열 수 있었다”이라며 “올들어선 DCM 분야에서 수익이 가장 많이 나고 있다”고 말했다.
주 법인장은 “글로벌 틈새시장(니치마켓)을 찾아 먹거리를 확보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기성 거대 IB들이 꽉 잡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 시장으로 직행하기보다는 틈새시장에서 체력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지난 7월엔 필리핀 부동산 개발사 비스타랜드의 글로벌본드 5000만달러(약 700억원) 발행을 주관했다. 추가 증액 발행에서는 단독 주관사를 맡아 3억달러(약 4190억원) 규모 달러채 발행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한국투자증권이 홍콩에 공을 들이는 것은 글로벌 사업의 핵심 지역이라서다. 일각에서 ‘홍콩 금융 약화론’이 제기되지만 아시아·태평양을 겨냥한 글로벌 자금은 여전히 홍콩을 가장 먼저 찾는다는 설명이다.
주 대표는 “현지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저로서는 홍콩의 금융허브 위상이 약화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다”며 “해외 유수 기업의 아시아 상장도, 미주·유럽 등 주요 지역의 딜도 싱가포르가 아니라 홍콩에 모인다”고 했다. 그는 “홍콩 증권거래소(HKEX) 시가총액이 싱가포르 증권거래소(SGX) 시총을 약 일곱 배 웃돈다”며 “싱가포르가 글로벌 금융허브로서 홍콩을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홍콩은 법인세 구조가 단순하고 세율(16.5%)이 낮다는 점,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무관세 지역이라는 점, 미국 달러에 통화가치를 연동한 ‘달러 페그제’를 쓰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아시아를 공략하는 글로벌 기업이 홍콩으로 몰릴 수 밖에 없습니다. 거대 시장인 중국으로의 통로(게이트웨이) 역할을 한다는 것도 장점이지요.”
주 법인장은 “일본계 글로벌 증권사로 통하는 노무라증권, 다이와증권을 추월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노무라증권은 1964년부터, 다이와증권은 1970년부터 각각 홍콩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거대 증권사다. 그는 “현실적으로 십수년 내에 골드만삭스를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노무라·다이와 정도는 실현가능한 목표로 본다”고 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전체 수익의 기존 10% 수준인 해외 비중을 2030년까지 30%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KIS 아메리카·싱가포르·유럽 등 해외 법인을 두고 있다. 미국 종합금융회사 스티펄과는 조인트벤처(JV)인 SF크레디트파트너스도 운영한다.
주 법인장은 “아시아태평양 시장 전반에서 사업을 키우려면 홍콩법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업무 프로세스 전 영역을 현지화해 적극적인 사업 확장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