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AI에 '올인'하는 日…2030년까지 10조엔 쏟아붓는다

입력 2024-11-18 17:12
수정 2024-11-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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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부문 투자에 적극 나선다. 대규모 보조금 지원 등을 통해 일본 첨단 산업을 육성하고 국제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경제 파급 효과만 160조엔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AI·반도체 산업 기반 강화 프레임’을 마련해 경제 대책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일본 ‘반도체 연합군’ 라피더스를 지원하기 위해 기존 보조금에 더해 정부 출자나 민간 금융회사 채무 보증을 허용하는 법안을 마련한 뒤 내년 의회에 제출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최근 총리로 재선출된 뒤 기자 회견에서 “2030년까지 내다보고 반도체와 AI 분야에 수년간에 걸쳐 10조엔(약 90조8810억원) 이상 공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향후 10년간 50조엔 이상의 관민 투자를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이다. 일본 정부는 이에 따른 경제 파급 효과를 160조엔으로 전망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보조금을 순차적으로 투입했다. 2021년부터 누적 3조9000억엔을 지원했다. 중기적 자금 지원 계획 없이 추가경정예산 등을 통해 필요 자금을 그때그때 조달하는 방식이어서 문제로 지적됐다. 니혼게이자이는 “단기로 순차적으로 보조금을 투입하는 방식은 예측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다년간 계획적인 지원으로 전환했다”고 전했다.

라피더스는 2027년 최첨단 2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홋카이도 지토세에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일본 정부에서 이미 9200억엔을 지원받았지만 약 4조엔을 더 조달해야 한다. 지원 대상에는 구마모토에 진출한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1위 업체 대만 TSMC 등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자국산 반도체 관련 매출 목표를 2030년 15조엔으로 잡았다.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 갈등 심화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각국이 반도체 산업의 기간산업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고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와 AI 부문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세계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고 동시에 지방경제 활성화까지 이끌어내려는 것으로 풀이됐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재입성하게 되면서 반도체 등 각종 첨단 기술 분야에서 강경한 대중 정책을 펼 가능성이 커졌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라피더스 제품의 중국 판매망이 막히면 첨단 반도체 시장에 안착하는 게 쉽지 않아지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로이터통신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속에서 세계 각국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며 “일본 정부 역시 대규모 지원을 통해 국제 경쟁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日에 적극 손 내미는 엔비디아이런 와중에 AI용 반도체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일본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라피더스를 통해 GPU(그래픽 처리 장치)를 위탁생산할 수 있다는 내용의 발언을 내놨다.

기존 대만 TSMC에 이어 일본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새롭게 구축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황 CEO는 최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엔비디아 AI 서밋’ 행사 후 기자회견 중 “공급망을 강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위탁생산 거점을 분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황 CEO는 TSMC가 매우 뛰어난 업체라는 전제를 깔았지만 ‘라피더스에 제조를 위탁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나는 라피더스에 신뢰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황 CEO는 이날 행사에서 엔비디아의 사업에 일본이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일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아울러 황 CEO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대담을 통해 “AI 활용으로 일본 업체가 잃어버린 수십 년을 되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일본에는 축적된 전문 지식이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로봇 산업에 AI를 접목해 물리적인 AI를 실현하고 디지털 휴먼 등으로 일본의 인력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편 황 CEO는 AI 혁명을 큰 파도에 비유하면서 “모든 업계, 국가에서 독자적인 AI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이것이 새로운 산업 혁명의 시작”이라고 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