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입맛에 맞는 예산을 대거 늘린 야당은 정부가 제출한 예산은 대폭 감액했다. 정부 예비비를 시작으로 윤석열 대통령 순방과 의료개혁 관련 예산까지 잘라내면서 내년 국정 운영에 지장을 초래할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야당은 각 정부 기관 특수활동비를 ‘권력기관 쌈짓돈’으로 규정해 삭감 대상 1순위에 올렸다. 지난 8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검찰과 감사원의 특활비 등을 전액 삭감한 게 대표적이다. 야당은 19일 운영위 전체회의에서도 대통령실 및 경호처 예산과 특활비 삭감을 벼르고 있다.
보건복지위에서는 ‘전공의 등 육성 지원’ ‘전공의 등 수련수당 지급’과 관련한 931억1200만원을 감액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정갈등 장기화로 전공의 복귀 여부가 불투명하다”며 삭감했다. 여당은 “정부가 필수의료 정상화를 위해 의료계가 오랫동안 요구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에 과감한 예산을 편성했는데 이번 삭감이 전공의들에게 잘못된 신호로 인식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정신건강 지원을 위한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 사업’ 예산도 ‘김건희 예산’으로 규정돼 74억7500만원 감액됐다. 자살 예방 등을 위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국민에게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 사업이다.
정부 비상금인 예비비도 예산 심사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예비비를 14.3% 늘린 4조8000억원 규모로 편성했는데 민주당이 13일 기획재정위 소위에서 절반을 삭감해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정부는 야당이 삭감을 강행하면 여야가 합의한 예산 증액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외교통일위에선 외교부의 공적개발원조(ODA) 관련 예산이 원안에서 32억2930만원 삭감돼 통과됐다. 야당은 국토교통위에서도 용산공원, 서울~양평고속도로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해 단독 의결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에서는 ‘동해 유전(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이 10% 삭감됐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관계자는 “여야가 각각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극한 대치 국면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민생을 위한 예산까지 정쟁의 대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예결특위는 18일부터 상임위의 예산안 예비심사 결과를 토대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본격 심사한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