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연의 경영 오지랖] '승진회피 시대'의 동기부여

입력 2024-11-17 17:08
수정 2024-11-18 00:26
‘승진 회피의 시대’다. 잡코리아가 지난해 2030세대 직장인 111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54.8%가 ‘임원 승진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책임져야 하는 위치가 부담스러워서’라는 대답이 1위(43.6%)를 차지했다.

한때 직장인에게 승진은 인생의 목표이자 성공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임원 기피’ 현상이 시작되더니 최근 들어서는 ‘팀장 보직 기피’ 현상까지 더해졌다. 2030세대는 워라밸을 위해 승진이나 보직을 기피하고, 4050세대는 고용 안정성을 위해 기피한다는 분석이다.

많은 조직의 리더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임원 자리는 한정돼 있고 많은 사람이 ‘굳이 임원을 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인사관리가 편해지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승진’ ‘임원’이라는 단어가 동기를 부여하지 못할 때 관리는 더 힘들어지는 법이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생산성도 떨어질 위험이 크다. 어쩌다가 이런 분위기가 형성됐을까?

첫 번째 이유는 길어진 수명에 따른 생애주기 변화다. 늦게 결혼해 30대 중반 이후에 첫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아이가 어릴 때는 육아를 분담하느라 워라밸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임원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할 40대 중반 이후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서도 불안한 임원 자리’보다는 현재의 안정된 정규직 자리에서 계속 아이를 키우고 지원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정년이 주기적으로 연장되고 있기에 60세 혹은 그 이후까지 최대한 버티다가 은퇴 이후 20~30년간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 훨씬 계획을 세우기에도 안정적이라는 장점도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자산 격차의 증대다. 초고령 시대에 은퇴 후의 긴 삶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줄 자산 증식에 대한 갈망이 커지면서 소득을 좀 더 올리고 직장에서 성취감을 얻기 위해 헌신하기보다는 일은 딱 주어진 만큼만 하고 자투리 시간이나 퇴근 이후 시간에 투자 공부를 하고 이를 실행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자산 격차까지 커지면서 어차피 임원까지 가봤자 근로소득으로는 큰 자산을 만들기 어렵다는 생각도 더해졌다.

변화한 생애주기와 가치관에 맞춰 새로운 인사관리 방식과 동기 부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금융권 일부에서 시행하는 ‘셀프 승진 추천제도’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다. 연차에 따라 자동으로 승진 대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 승진이 필요한 시기에 자신의 계획에 따라 진급 대상자로 추천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의 이 변화를 인식하고 각자 조직에 맞는 대응 방안을 하루라도 빨리 찾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돌아볼 때가 됐다. 그동안 임원이 되면 성격이 파탄 나거나 몸이 망가지거나 혹은 그냥 무능해지는 경우를 수없이 봐 온 이들에게 ‘롤 모델’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고승연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