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우리나라 원화 가치가 9% 가까이 뒷걸음친 것으로 분석됐다. 달러 가치 강세 때문이라고 하지만, 미국 이외 주요국과 비교해서도 가치 하락폭이 크다.
주가지수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이후 주요국 주가지수 중 코스피만 하락했다. 코스닥지수의 낙폭은 20%에 달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단기적 자금 이동의 결과가 아니라 반도체 등 수출 주력 품목의 경쟁력 하락, 막대한 가계부채 부담 등에 짓눌린 구조적 내수 부진, 고령화 등에 따른 잠재성장률 훼손이 종합적으로 한국 원화와 주식 가치에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주간시장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398.8원이다. 작년말(1288원) 대비 8.6% 상승한 수준이다. 환율이 상승했다는 건 원화가치가 하락했다는 뜻이다. 원화보다 달러 대비 더 약세인 통화는 일본 엔화가 거의 유일하다. 연초 이후 엔·달러 환율은 141.181엔에서 156.295엔으로 10.71% 뛰었다.
엔화 이외의 주요국 통화 가치 절하율은 △유로 -5.11% △영국 파운드 -1.08% △호주 달러 -5.67% △대만 달러 -5.99% △역외 위안 -1.85%로 모두 원화보다 낮았다.
주식시장의 흐름도 원화가치와 비슷하다. 코스피는 작년 말 2655.28(종가 기준)에서 올해 11월 15일 현재 2416.86으로 8.98% 떨어졌다. 특히 코스닥의 하락률은 20.90%(866.57→685.42)에 이른다.
주요국 주가지수 중 올해 들어 하락한 건 코스피와 코스닥지수 이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 3대 주가지수 중 나스닥종합지수(24.44%)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23.08%)은 20% 넘게 뛰었고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15.27%)도 상승률이 두자릿수다. 올해 들어 수십차례나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기도 했다.
유로권의 유로스톡스50, 독일DAX, 영국FTSE100도 각각 6.04%, 14.68%, 4.27% 올랐다. 우리나라와 경쟁 관계인 중국·대만권의 상하이종합지수·홍콩항셍지수·대만가권지수의 상승률은 각각 11.96%, 13.95%, 26.84%이다.
코스피, 코스닥지수와 등락률이 비슷한 건 전쟁 중인 러시아 RTS(-20.79%) 정도다.
한국의 통화가치와 주가지수가 주요국과 비교해 약세를 보이는 배경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 때문일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 경쟁력이 경쟁사들에 비해 뒤쳐진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 같은 우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경제 구조개혁 작업은 지지부진하고, 내수 부양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도 지적된다. 한 민간 연구기관 관계자는 "정부나 한은은 항상 '올해도 성장률 2% 넘지 않았느냐, 내년에도 2%는 넘을 것이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2%쯤 되니까 나쁘지 않다' 이런 말만 되풀이하며 문제가 없다는데 무슨 대책이 나오겠나"라고 반문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