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남대문시장. 시장 안쪽으로 들어서자 손님 없이 주인 홀로 가게를 지키는 점포가 눈에 띄게 많았다. 이불 매장 직원 박미영 씨(64)는 “장사가 잘 안돼 자진해서 월급 3분의 1을 반납했다”며 “오전 9시에 가게를 여는데 낮 12시까지 물건을 팔지 못하는 날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서울 명동 지하쇼핑센터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안경원을 운영하는 양윤석 씨는 “오늘은 외국인에게 2만원짜리 선글라스 판 게 전부”라며 “올해 5월부터 장사가 안되더니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 매출이 더 줄었다”고 말했다.
전국 각지에서 내수 소비와 밀접한 업종이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경기 회복에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의 월간 경제 진단에서도 ‘내수 회복 조짐’이라는 표현이 7개월 만에 사라졌다. 그동안 경기 진단에 줄곧 담기던 ‘경기 회복 흐름’ 문구는 ‘완만한 경기 회복세’로 후퇴했다.◆길어지는 내수 부진기획재정부는 이날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1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 안정세가 확대되는 가운데 완만한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대내외 여건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번 경제 동향에서 주목할 대목은 지난 5월부터 경기 진단에 계속 등장한 표현인 ‘내수 회복 조짐’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내수 지표 중 설비 투자를 제외하면 뚜렷한 회복세가 관측되지 않는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소매판매는 전기 대비 기준으로 지난 3분기까지 세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건설투자는 올해 2분기 -1.7%에서 3분기 -2.8%로 감소율이 확대됐다. 10월 국내 신용카드 승인액은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했다. 지난해 7월(0%) 후 15개월 만의 최소 증가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수 회복 흐름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며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져 내수도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불안한 경기 흐름문제는 내수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여겨지던 수출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수출(-0.4%·전기 대비)은 1년9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 여파로 올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은 예상치(0.5%)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이에 따른 경제 위기감은 기재부의 이번 경제 동향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기존 ‘경기 회복 흐름’ 문구 대신 ‘완만한 경기 회복세’가 등장했고, ‘수출 중심의 회복’이란 표현이 사라졌다.
국내 실물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통계청 경기순환시계에서도 회복 둔화 흐름이 감지된다. 9월 기준 경제 지표 10개 중 6개가 하강 또는 둔화 국면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은 4개월째 둔화 국면에 머물러 있고, 서비스업생산지수·건설기성액·취업자 수·기업경기실사지수·소비자기대지수 등이 하강 국면에 분포했다.
내년 초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통상 환경 변화도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강도 관세 정책이 현실화하면 경기순환시계에서 수출도 하강 국면에 접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박상용/라현진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