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15일 15:3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부동산 개발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기자본 비율을 종전 3%에서 20%로 끌어올리도록 하자 시행사들이 자기자본 부족 현상을 마주할 것을 예상해 에쿼티 공급 펀드 조성에 박차를 가하는 추세다. 자기자본 규제에 따라 앞으로 일부 대형 시행사와 증권사가 부동산 개발 시장을 주도해나가는 대형화 현상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치고 나가는 KB증권…2000억 부동산 에쿼티 펀드 조성1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KB증권은 내년 1분기 2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개발 사업 에쿼티(자본) 투자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PF 자기자본 비율 상향에 따라 에쿼티 쇼티지(공급부족)가 발생한 개발 시행사에 자본을 공급해 두자릿수 이상의 고수익을 노리는 전략이다. KB증권이 IMM인베스트먼트와 함께 조성한 1200억원 규모의 부동산 기관전용 사모펀드의 후속 펀드 성격이다.
KB증권은 부동산 기관전용 사모펀드팀을 별도로 꾸려 활발하게 부동산 투자에 나서고 있다. 부동산 기관전용 사모펀드를 만들어 서소문 11·12지구 재개발 사업 PF 대출 등에 투자를 계획 중이다. 에쿼티 펀드 외에도 부동산 전 단계에 투자하는 펀드도 출시할 방침이다.
증권사들, 기관전용 펀드 조성 경쟁앞으로 자본력 있는 대형 증권사들이 개발 시장을 주도하게 것으로 관측된다. PF 기관전용 사모펀드를 추진해온 미래에셋증권, 하나증권 등도 비슷한 에쿼티 펀드 조성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이 증권사들은 연기금, 금융회사 등 일부 전문투자자만 투자할 수 있는 기관 전용 사모펀드를 추진해 자금을 모집해왔다. PF 대출 위주로 투자하는 펀드였다. 정부 정책에 맞춰 이제 에쿼티 펀드도 검토하는 중이다.
정부는 기존 3% 안팎인 부동산 PF 사업의 자기자본 비율을 2028년까지 20%로 상향시키는 방향을 유도하기로 했다. 금융사가 자기자본 비율이 낮은 PF 사업에 대출해줄 때 적립해야 하는 자본금·충당금 비율을 높이는 방식을 통해서다. 앞으로 1조원 규모의 사업장이면 과거 자기자본 300억원으로도 개발할 수 있었으나 이제 2000억원을 모아야 한다. 조단위 자기자본을 앞세운 증권사들이나 일부 대형 시행사 정도만 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내 시행업계는 95%가 연매출 100억원 이하 영세업체로 알려져 있다. 증권사가 사업 시행 역할을 맡고 영세한 시행사는 프로젝트 관리(PM) 역할에 그치는 구조로 개발 시장이 재편될 전망이다.
사라지는 계약금 대출로 ‘투명화’…개발 유인 급감 우려증권사들은 기관전용 사모펀드를 통해 부동산 개발 시장에 기존보다 더 투명한 자본 공급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증권사들은 브릿지론 전 단계에 ‘토지계약금 대출’ 형태로 자금을 투입했다. 대출이라는 명칭이지만 연 100%에 달하는 수익을 제공받는 등 사실상 에쿼티 성격이었다. 앞으로 이 토지계약금 대출은 사라지고 에쿼티 펀드로 전환될 것이라는 게 IB 업계의 전망이다.
문제는 우량 사업장만 선별적으로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될 것이란 점이다.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압박을 받는 증권사들은 현실적으로 모든 사업장에 자본을 공급하기 어렵다. 증권사들이 공급하는 사업장은 일부 우량 사업장에 한정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레버리지를 일으키지 못하는 구조가 돼 사업 수익성도 현저히 하락한다. 개발 유인이 줄어들게 된다는 의미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예전엔 자본 200억원을 넣어서 6년 걸려 2000억원이 되는 시대였다면 이젠 1000억원을 투입해 같은 기간 2000억원을 만드는 것으로, 사실상 연 12% 수준의 수익률로 급감한다”며 “온갖 리스크를 지고 연 12%를 벌고자 하는 에쿼티 투자자가 없어질 것이라 안정적으로 개발될 사업장만 노릴 수밖에 없어 보수적인 집행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