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거꾸로 가는 ICT 정책…진흥은 없고 통제만 있다

입력 2024-11-14 17:47
수정 2024-11-15 00:09
“이번에도 ICT(정보통신기술) 산업 진흥을 위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통신사 고위 관계자는 지난 13일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통신 3사 최고경영자(CEO) 간 간담회를 이렇게 평가했다. 통신요금 인하 등의 요구사항을 통신사에 전달하기 위한 설명회가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됐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5년 전, 10년 전부터 정부가 통신사를 마주할 때 나오는 발언은 대동소이하다. 투자 확대, 보조금(지원금) 확대, 요금 인하, 민생 지원 등의 레퍼토리가 반복된다. 통신사는 공공재인 통신망을 빌려 사업하는 기업인 만큼 정부와 의무를 나눠야 한다는 게 과기정통부의 논리다.

지원부처로 분류되는 산업통상자원부나 중소벤처기업부는 형식이라도 갖춘다. 먼저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고,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줄 사항을 논의한다. 하지만 과기정통부와 통신사의 관계에선 이런 ‘체면치레’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통신사와 비슷한 처지인 기업은 금융당국의 통제를 받는 금융회사 정도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예산안에도 산업 진흥을 위한 의지는 읽히지 않는다. 내년 정보통신진흥기금은 올해 1조3797억원보다 26.7% 적은 1조110억원뿐이다. 과기정통부 전략목표 중 하나인 ‘인공지능(AI)·데이터·클라우드 등 디지털 신산업 육성’, ‘세계 최고 네트워크 구축과 디지털 혁신 전면화’ 관련 내년 예산도 전년 대비 각각 996억원, 82억원 줄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이 ICT 산업 진흥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통신비 완화 주문에도 본질적인 고민이 빠져 있다. 유 장관은 간담회에서 “(5G 요금제 인하로) LTE 요금제가 상대적으로 비싸진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그런 상품이 있다면 당장 없애겠다”고 화답했지만 내심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가 사실상 ‘요금 인가제’를 운영 중이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과기정통부가 이용자 보호를 명목으로 구형 요금제를 없애지 못하게 하는 게 관례처럼 만연해 있다”며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는 상품에 해당하는 게 요금제지만 출시도, 폐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유 장관은 통신 3사 CEO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경쟁을 안 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아이스 브레이킹 차원이었다지만 듣는 통신사엔 압박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통신사를 다그치기에 앞서 왜 국내 통신 시장에선 발전적인 경쟁이 일어나지 않을까를 곱씹어봐야 한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요금 통제가 아니라 산업 발전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