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명 럭셔리 패션 그룹 버버리를 둘러싸고 인수합병(M&A)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명품 대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버버리 인수설이 돌더니 이탈리아 명품 패딩 브랜드 몽클레르가 버버리를 삼킬 것이란 보도도 나오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으나, 업계에선 버버리 몸값이 크게 떨어져 언제든지 인수설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몽클레르는 최근 버버리를 인수한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 “근거 없는 소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앞서 영국 패션미디어 미스트위드는 몽클레르가 버버리 인수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몽클레르 모기업인 더블R 지분을 10% 보유한 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몽클레르의 버버리 인수를 부추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서도 뒤따라 보도하면서 지난 4일(현지시간) 버버리 주가는 8% 급등했다.
몽클레르 측 부인에 인수설이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면서 버버리 주가는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처럼 버버리는 수개월째 인수설에 시달리고 있는데, 관련 기업들 부인에도 여전히 M&A 설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버버리는 1856년 설립된 후 특유의 체크 무늬와 트렌치코트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렸다. 약 170년간 전세계 '트렌치코트'의 대명사로 자리 잡을 정도로 명품 의류 시장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다. 전세계 중산층 고객들은 안감에 특유의 체크무늬 패턴이 새겨진 버버리 트렌치코트 하나쯤은 장만해야 한다고 여기기도 했다. ‘바바리’라는 트렌치코트의 우리 식 별칭도 버버리 브랜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2년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됐고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도 지속적 성장과 회복력을 인정받아 런던 주식시장의 대표 지수 'FTSE 100'에 편입됐다. FTSE 100은 런던 증권거래소 상장사 중 시가총액 상위 100개 기업의 주가를 지수화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수요 부진 등에 따른 럭셔리 시장의 전반적 침체 속에서 실적과 주가에 타격을 입으면서 버버리는 급격히 추락했다. 역대 최고경영자(CEO)들은 회사 이미지를 되살리고 고급 브랜드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지난 10년 동안 4명의 CEO가 교체되는 등 내홍을 겪은 끝에 결국 버버리는 FTSE 100에서 퇴출됐다.
하지만 M&A 시장에선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주요 패션 대기업들의 인수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버버리는 럭셔리 패션하우스를 운영하는 전 세계 몇 안되는 브랜드다. '명품 대기업'에 속해 있지 않은 럭셔리 브랜드는 에르메스 샤넬 토즈 고야드 등 한 손에 꼽는다. 럭셔리 부문에서 입지가 부족한 패션기업 입장에선 버버리 인수는 진입 허들이 높은 명품 시장에 곧바로 입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런던 시내 17개 M&A 데스크 펀드 매니저, 애널리스트들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버버리가 인수 표적 1위로 올랐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버버리의 인수합병 가능성을 점치며 “버버리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유일한 규모의 영국 명품 브랜드"라며 "풍부한 유산과 상징적인 제품 라인과 액세서리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라고 언급했다.
최근 기업가치가 추락해 '저가 매수 기회'라는 분석도 있다. "주가가 조정받는 이 때가 버버리를 헐값에 인수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게 M&A 업계 시각이다. 미국 자산운용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버버리의 적정 가치는 주당 13.30파운드(약 2만3700원) 수준이다. 버버리의 현재 주가가 8파운드(약 1만4200원) 수준을 밑도는 점을 감안하면 40%가량은 저평가돼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최근 영국 파운드화 가치까지 낮아지면서 잠재적 입찰자들의 인수 의욕을 높이고 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