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실트론이 6억3000만달러(약 8900억원)를 들여 짓는 미국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 공장 투자와 관련해 미국 정부로부터 5억4400만달러를 저금리로 대출받는다. SiC 웨이퍼는 고성능 전력반도체의 핵심 소재로, 이를 기반으로 만든 반도체는 고전압·고온의 극한 환경에서도 잘 작동한다. SK실트론은 급성장하고 있는 SiC 전력 반도체용 웨이퍼 시장을 잡기 위해 미국 베이시티와 경북 구미 등 2개 공장에서 제품 생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12일(현지시간) SK실트론의 미국 자회사 SK실트론CSS에 5억4400만달러를 대출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 조건부 승인을 거쳐 본계약을 맺었다. 미국 에너지부는 첨단 기술기업의 자국 투자를 지원하는 ‘AVTM 대출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SK실트론은 2022년부터 2027년까지 총 6억3000만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다.
SK실트론은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개발·생산하는 업체다. SK실트론CSS는 SK실트론이 2020년 3월 인수한 미국 듀폰의 웨이퍼 사업부가 전신이다. SiC 웨이퍼 개발·생산을 주력으로 한다. SiC 웨이퍼는 전력을 변환·저장·분배·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전력반도체 원료로 각광받고 있다. SiC 전력반도체는 일반 전력반도체 대비 약 10배의 고전압과 약 3배의 고온도 견뎌내는 특성 덕분에 전기차와 산업 장비용 모터 등에 주로 쓰인다. SiC 전력반도체를 전기차에 적용할 경우 주행거리가 7.5% 증가하고 충전 시간은 75% 단축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시장조사업체 욜디벨롭먼트에 따르면 SiC 전력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3년 27억달러에서 2029년 99억달러까지 커질 전망이다. 전기차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커지는 데 따른 것이다.
SK실트론은 현재 지름 150㎜의 SiC 웨이퍼를 생산하고 있다. 2023년엔 SiC 전력반도체 분야의 강자 독일 인피니언에 웨이퍼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내년부터 미국 공장에서 차세대 제품인 200㎜ SiC 웨이퍼를 생산해 현재 6% 수준인 SiC 웨이퍼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SK실트론의 SiC 웨이퍼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SK실트론이 당초 3억달러로 잡은 미국 투자 규모를 두 배 이상 늘리는 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최근 SK실트론CSS의 미국 투자를 ‘한·미 경제협력의 성과물’로 평가하며 “한·미 파트너십의 긍정적인 영향과 성공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말했다.
SK실트론CSS가 미국 정부와 대출 본계약을 체결하면서 삼성전자의 미국 반도체 공장 투자 관련 보조금 협상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4월 삼성전자에 64억달러 규모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최종 계약 체결을 위해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