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초격차 구축을 위해 조성하는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의 송전망 건설 비용을 둘러싼 정부와 반도체 대기업 간 갈등이 해소됐다. 한국전력이 비용을 대는 공용망을 늘리고 반도체 클러스터 참여 기업이 비용을 대는 전용망은 최대한 줄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부담을 1조원 이상 줄이는 방안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러스터 건설 사업이 한층 탄력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3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한국전력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오는 2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송전망 관련 양해각서(MOU)를 맺는다. 한전과 반도체 대기업이 협의 중인 3단계 전력망 공급 방안 가운데 1단계 방안이 타결되는 것이다. 박성택 산업부 1차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전력망 문제가 대부분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업 부담이 절반 가까이 줄 것”이라고 했다. 용인 클러스터 송전망 건설 비용이 총 3조7100억원으로 추산되는 점을 고려할 때 삼성과 SK는 1조원 이상의 비용 부담을 덜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K, 송전망 비용 1조 이상 절감…"클러스터 조성 사업 탄력"
작년 3월 산업통상자원부는 경기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2047년까지 622조원을 쏟아부어 파운드리 중심 반도체 생산기지를 건설한 뒤 기존 생산단지(경기 용인 기흥, 화성, 평택, 이천)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팹리스밸리(판교)를 잇는 메가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계획이다.
문제는 클러스터에 필요한 원전 10기 분량(10GW 이상)의 전력을 끌어오는 송전망 건설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였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송전망 건설의 혜택을 받는 반도체 대기업이 건설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일본 중국 등 경쟁국이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며 반도체 대기업을 유치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우리 정부는 수조원이 드는 송전망 건설 비용까지 기업에 떠넘긴다며 반발했다.
오는 22일 한전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체결하는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전력망 양해각서(MOU)’는 정부의 수익자 부담 원칙을 해치지 않으면서 기업의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는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변전소 위치와 송전망 및 전용망의 길이 조정 등을 통해 송전망 건설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도출했다”고 말했다. 송전선로를 가능한 한 짧게 줄이고, 한전이 건설 비용을 부담하는 공용망을 늘리는 대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부담하는 전용망은 최대한 줄이는 방안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2024년부터 용인클러스터에 14개 노선, 총연장 1153㎞의 345㎸ 송전선로를 건설할 계획이다. 송전망 건설 비용은 약 3조7100억원으로 추산된다. 조정안대로라면 송전선로 길이는 애초 계획보다 짧아지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조원 이상의 비용 부담을 덜 전망이다.
이 같은 절충안은 삼성전자 평택반도체캠퍼스 조성에도 적용된 사례가 있다. 2022년 9월 한전과 삼성전자는 통합 전력 인프라를 공동으로 구축하는 전력공급협약을 체결했다. 애초 계획한 전용망을 대폭 줄여 송전선로 길이를 26㎞에서 15㎞로 단축했다. 그 결과 송전망 건설 비용을 26%(4200억원) 줄일 수 있었다. 송전망 갈등이 해소됨에 따라 정부의 다른 반도체 지원 사업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여야는 반도체특별법을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하고 세부안을 논의하고 있다. 100조원 규모 반도체기금 조성과 특별회계 도입, 국가반도체위원회 설치, 세제 혜택 등의 내용이 반도체특별법에 담길 전망이다. 반도체특별법에는 보조금 지원안이 빠져 있어 경쟁국과의 격차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계속될 전망이다.
정영효/이슬기/황정환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