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반도체 관련 지원사업 예산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규모만 증액 편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4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내년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반도체 글로벌 첨단 팹 연계 활용(R&D) 사업' 예산은 54억9300만원이 편성됐다. 올해보다 29억7300만원 증액된 규모다.
이 사업은 공동 연구개발, 테스트베드 실증평가 지원, 인턴십·기술인력 교류 등으로 구분된다. 이 중 테스트베드 실증평가 지원 사업은 나노종합기술원이 맡는다. 반도체·응용분야 기술을 보유한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미국 비영리 반도체 연구기관 NY크리에이츠의 테스트베드를 활용해 기술 개발·실증, 성능평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내년엔 총 20억6300만원이 투입해 10개 계속과제와 5개 신규과제를 지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수요 확보조차 되지 않은 상황으로 나타났다. 4차례에 걸쳐 공모를 진행했는데도 올해 지원하는 10개 과제 중 6개를 선정하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현재 5차 공고를 진행 중이다.
나노종합기술원은 지난 3월 NY크리에이츠와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도 수요 확보조차 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산정책처는 "충분한 수요가 확인되지 않은 만큼 내년도 예산안의 적정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수요 확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무엇보다 기업 입장에선 이 사업을 통해 R&D 예산을 지원받더라도 전액 NY크리에이츠 반도체 팹 시설 활용비로만 사용하도록 제한한 탓에 부담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산정책처는 "연구개발비 전체를 NY크리에이츠 반도체 팹 시설 활용비로 편성·사용하도록 하고 있고 기업 입장에선 미국 현지 연구에 소요되는 인건비·연구개발활동비 등을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업 참여를 유인할 요인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부부처 간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않은 사업도 도마에 올랐다.
내년 한 해에만 총 178억원의 예산이 편성된 산업통상자원부의 반도체 첨단패키징 선도기술개발(R&D) 사업을 놓고도 부처 간 협업이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사업은 고집적·고기능·저전력화 첨단 패키징 전략기술 개발을 지원하려는 취지로 추진됐다.
과기정통부는 올해부터 반도체 첨단패키징 핵심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부도 내년 예산안에 반도체 첨단패키징 선도기술개발 사업을 신규 편성했다.
과기정통부 사업은 3D 적층 패키징 소재기술, 고효율·미세피치 패키징 제조기술, 고방열 패키지 구조 설계·신뢰 향상 기술에 대한 핵심 원천기술 개발을 지원한다. 내년 예산안엔 75억4400만원이 편성됐다. 과기정통부 소관 '차세대 반도체 대응 미세기판 기술개발 사업'에도 73억900만원이 편성된 상태다.
산업부 사업은 과기정통부의 차세대 반도체 대응 미세기판 기술개발 사업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산업부는 '2.3D향 수동 소자 내장형 인터포저 공정 개발' 과제를 지원할 계획이다. 과기정통부도 이와 유사한 '2. xD 첨단 패키지용 폴리머 인터포저 소재 및 공정 핵심기술' 개발을 지원하기로 예정돼 있다.
이 외에도 최소 3개 과제가 유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예산정책처는 "산업부와 과기정통부 간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않고 협업 사업보다 각 부처 개별 사업으로 추진되면서 부처 간 중복이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며 "협업 사업 중심으로 추진하거나 역할 분담을 명확히 설정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