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구매할 때 카드 할부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급증하고 있다. 카드 할부는 대출 상품과 달리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등 소비자 입장에서 유리한 점이 많아서다. 국내 카드업권의 자동차 할부 잔액은 2년여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할부가 ‘가계부채 사각지대’에서 몸집을 불리자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다만 “가계부채 차원에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금융당국 주장과 “내수경기가 위축될 수 있다”는 기획재정부 의견이 엇갈리면서 정부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12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8개 전업 카드사의 자동차 할부 잔액은 올해 6월 말 6조2243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말 3조692억원에서 2년 반 만에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카드사의 자동차 할부 잔액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회사별로는 삼성카드(1조9294억원) 현대카드(1조8529억원) 롯데카드(1조1792억원) 하나카드(5832억원) 순으로 잔액이 많았다.
카드사들은 자동차 구매와 관련해 할부금융과 카드 할부 등 두 가지 상품을 취급한다. 할부금융은 대출 상품이기 때문에 DSR 적용을 받는다. 은행 자동차담보대출(오토론)이나 캐피털사 할부금융 상품이 DSR을 적용받는 것과 같다. 반면 카드 할부는 형식상 대출이 아니라 결제이기 때문에 DSR에서 제외된다. 그동안 금융권에선 “카드사의 자동차 할부와 은행·캐피털사의 대출 상품이 사실상 동일한데 서로 다른 규제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근 자동차 할부 잔액이 급증하는 건 DSR 외에도 소비자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아서다. 신차 구입 시 카드로 결제하면 최대 100만원가량의 캐시백을 받을 수 있다. 자동차를 신용카드로 구매하면 자동차회사는 통상 결제금액의 1.9%를 가맹점수수료로 지급하는데, 카드사들은 이렇게 받은 수수료를 딜러와 고객 등에게 돌려준다.
금융당국도 자동차 할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날 금융위원회 주도로 열린 가계부채 점검회의에서도 자동차 할부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동차 카드 할부가 대출은 아니지만 가계신용에 해당한다”며 “6조원이라는 수치를 가볍게 넘길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당국은 자동차 할부를 DSR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에는 선을 긋고 있다. 자동차 카드 할부를 DSR에 집어넣으려면 모든 카드 결제에 대해 DSR을 적용해야 해서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대신 금감원은 신차 구입 시 연 소득을 고려해 신용카드 특별한도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특별한도란 고객이 병원비나 경조사 등으로 불가피하게 지출이 늘었을 때 카드사가 한시적으로 한도를 늘려주는 것이다. 일부 카드사는 신차 구매 시 연 소득의 세 배까지 특별한도를 부여하는데, 금감원은 “상환 능력에서 크게 벗어나게 한도를 늘려주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보고 있다.
기재부는 금융당국에 “한도 축소 시 자동차 소비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가계부채와 내수경기를 두고 경제부처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관계부처 간 협의를 통해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