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건전성을 외면한 무분별한 확장 재정이야말로 인기 영합적인 정책입니다. 국가 성장을 위해선 인기 영합적이고 근시안적인 조세·재정정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영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사진)은 1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2002년부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로 재직한 조세·재정 전문가인 이 원장은 지난달 30일 제15대 조세연 원장으로 취임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2017년 교육부 차관을 지냈다. 이 원장은 “전 정부를 거치면서 재정원칙과 규율이 무너졌다”며 “정치인들이 표 계산에 눈이 멀어 재정을 낭비하면 성장에 저해되는 요소들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가채무 많으면 성장 훼손이 원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확장 재정에서 건전 재정으로 기조를 바꾼 것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다만 현 정부도 여전히 재정이 확장 편성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채무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를 넘어도 문제가 없다는 일각의 주장에 강하게 반박했다. ‘40% 마지노선의 근거가 뭐냐’고 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GDP 대비 50.4%(국민계정 개편 전 기준)였다.
이 원장은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면서도 버틸 수 있는 나라는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보유해 국채를 얼마든지 발행할 수 있는 미국이 유일하다”며 “무분별한 확장 재정으로 채무가 쌓이면 남부 유럽이나 남미 국가처럼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고 했다. 국가채무가 많으면 기준금리를 앞세운 통화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해 성장 잠재력도 훼손된다는 설명이다.
이 원장은 정부가 올해 30조원의 세수펑크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환평형기금 등 기금을 활용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부족한 돈을 국채 발행을 통해 메꿨다면 대외 신인도가 훼손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 법인세율 인하에 대비해 국내에서도 현행 24%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트럼프 1기 당시 법인세율 인하는 미국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주식시장도 호황으로 이끈 계기가 됐다”며 “미국이 법인세를 낮추면 우리도 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법인세율을 유지하면 경제 성장이 어려울 뿐 아니라 세수 확보조차 힘들 수 있다는 것이 이 원장의 설명이다. 상속세 개편 서둘러야이 원장은 상속세가 ‘1%만의 세금’에서 과세 대상이 확대돼 중산층 세금으로 바뀌면서 개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높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행 50%에서 40%까지 낮춰야 한다”며 “1억원 이하 하위 과세표준 구간도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상속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현행 유산세 방식에서 상속인이 물려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매기는 유산취득세가 서둘러 도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정부가 검토에 들어간 소득세 물가연동제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이 원장은 “과표구간이 자동으로 상향 조정되면 지금도 많은 면세자 비중이 더 커질 것”이라며 “면세자 비중이 30% 밑으로 내려온 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강경민/이광식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