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협회 주도로 출시된 자산배분형 펀드인 디딤펀드가 투자자에게 외면받고 있다. 기존 자산배분형 펀드와 차별화하기 쉽지 않은 데다 은행에서 가입할 수 없다는 게 흥행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12일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디딤펀드 출시일인 지난 9월 25일부터 전날까지 15개 신규 상품에 총 244억원이 유입됐다. 흥국자산운용이 모그룹 계열사로부터 투자받은 초기 설정자금 200억원을 제외하면 순유입액은 44억원에 불과하다. 기존에 있었던 상품을 포함한 25개 상품에 유입된 금액은 308억원으로 집계됐다.
디딤펀드란 이름이 붙은 상품은 총 25개지만 이 중 새로 나온 펀드는 15개다. 나머지 10개는 기존 자산배분형 펀드의 이름을 바꾼 것이다.
디딤펀드는 원리금보장형에 묶인 퇴직연금 자산을 실적배당형으로 유인하려는 목적으로 금융투자협회가 중심이 돼 출시했다. 협회 회원사인 자산운용사들이 ‘디딤’이라는 공통 브랜드를 달고 상품을 내놨다. 원리금보장형과 실적배당형 사이 디딤돌 역할을 하는 펀드라는 의미다.
디딤펀드는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을 포트폴리오의 절반 이하로 둬야 한다. 자산 비중을 균형 있게 유지한다는 뜻에서 밸런스드펀드(BF)라고 불린다. 물가상승률을 웃도는 장기 투자 펀드로 기획했지만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에 포함되지 않았다. 디폴트옵션에 들려면 고용노동부 승인 절차가 필요한데 아직 승인을 받지 못했다.
판매처가 증권사뿐이어서 은행 등에서 상품에 가입할 수 없는 점도 한계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전체 퇴직연금 자산 가운데 은행을 통한 투자금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며 “증권사를 통해 투자하는 고객은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 BF가 주목받기 어렵다”고 했다.
기존 자산배분형 펀드와 비교해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퇴직연금 담당 임원은 “퇴직연금 투자자 사이에서는 타깃데이트펀드(TDF)가 대표 자산배분형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며 “운용사와 증권사에도 TDF와 경쟁 관계에 있는 디딤펀드에 역량을 집중할 유인이 없다”고 말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