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 금융회사들이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담보로 ‘네오클라우드’ 기업에 천문학적 금액을 대출해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업체는 미리 확보한 엔비디아 GPU를 담보로 대출받은 금액을 더 많은 GPU를 사는 데 쏟아부었다. 최근 세계적인 GPU 품귀 현상 배경에도 네오클라우드 기업들의 매점매석 행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조원 ‘칩 담보대출’
1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블랙스톤·칼라일·블랙록·핌코 등 월가 금융회사들은 네오클라우드 기업들에 이들이 보유한 H100 등 엔비디아 GPU를 담보로 110억달러(약 15조4000억원) 이상을 대출해줬다.
이들 기업은 엔비디아의 ‘우선 파트너’ 자격으로 조달한 인공지능(AI) 칩 수만 개를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고, 대출금을 다시 AI 칩을 사는 데 사용했다. 미국 최대 네오클라우드 업체 코어위브는 보유하고 있는 4만5000개 이상 GPU를 담보로 100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코어위브 기업 가치는 지난해 초 20억달러(약 2조7000억원)에서 올해 190억달러(약 26조1000억원)로 9배 넘게 급증했다.
코어위브가 거액의 민간 대출을 성공적으로 받자 더 많은 금융회사가 칩 담보대출에 나섰다. FT에 따르면 람다는 지난 4월 맥쿼리로부터 5억달러를, 크루소는 지난달 한 대체자산 운용사로부터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해 34억달러를 확보했다. GPU 시장 폭발적 성장월가에서 이런 칩 담보대출이 성행하며 GPU 품귀 현상을 부추겼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최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빅테크가 너도나도 AI 개발에 뛰어들며 GPU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월가는 GPU 담보 가치를 높게 평가했고, 더 많은 금액을 조달한 네오클라우드 업체들이 더 많은 GPU를 확보하며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이런 악순환은 글로벌 GPU 시장에서 엔비디아 위상을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에서도 엔비디아 GPU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주요 1441개 AI 기업이 보유한 엔비디아 H100은 작년 말 기준 1961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타와 MS가 지난해에만 H100을 각각 15만 개 사들인 것과 대조적이다. SK텔레콤은 올해 2월 네오클라우드 기업 람다의 시리즈C 투자에 참여하고 한국에서 공동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동안 천정부지로 치솟던 GPU 가격이 최근 하락세를 보인다는 점은 변수다. 구글 메타 오픈AI 등 빅테크가 자체 AI 칩을 개발하는 데다 ‘엔비디아 대항마’로 꼽히는 AMD도 고성능 GPU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네오클라우드 기업이 테크 업체와 맺은 GPU 임대 계약이 향후 몇 년 새 만료되기 시작하면 시장에 칩이 과잉 공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이승우 기자
■ 네오클라우드
인공지능(AI) 관련 제품을 개발하는 업체에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기업을 말한다. 코어위브, 크루소, 람다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