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2위 영풍그룹이 바람 잘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비철금속 세계 1위이자 그룹내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분쟁을 이어가는 와중에 핵심 사업소인 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 문제로 2개월 조업 정지 처분을 받았다.
11일 법조계와 산업계에 따르면 영풍은 지난 1일 석포제련소 조업정지 처분취소 소송이 대법원에서 기각돼 조업정지 1개월 30일 처분이 확정됐다고 공시했다.
이번 영업정지 처분이 언제부터 적용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낙동강 상류인 봉화군에 위치한 영풍 석포제련소는 2019년 오염방지시설을 거치지 않은 폐수 배출시설을 설치·이용한 사실 등이 적발돼 이번에 조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영풍은 해당 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며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에서도 영풍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행정처분이 확정됐다.
석포제련소는 지난 4일 환경부 수시 점검에서도 황산 가스 감지기 7기를 끈 채 조업한 사실이 적발됐다. 환경부는 처분 확정에 앞서 석포제련소의 소명 의견을 들은 후 허가조건 2차 위반에 따른 조업정지 10일 처분 여부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확정되면 10일 조업정지 처분이 추가될 전망이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각종 환경·안전사고로 가동률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제련소 가동률은 지난해 80%에서 올해 상반기 58%까지 떨어졌다. 영풍그룹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제련부문 실적 감소 등 영향으로 지난해 1700억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다.
영풍이 환경부로부터 석포제련소 통합 환경 허가를 받는 조건으로 매년 1000억원 규모의 환경 투자를 단행하는 상황에서 이번 제재로 막대한 영업 손실이 예상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제개혁연대와 영풍 일반주주들이 11일 석포제련소의 환경법 위반 사건과 관련, 영풍 전현직 이사 5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주주대표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석포제련소의 환경 오염이 수년간 지속돼왔다며 "단순한 우연이 아닌 회사 차원의 계획된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에 책임 있는 이사로 장형진 영풍 고문과 위법행위 기간 회사의 대표이사 등으로 재직했던 이사 3명(이강인·박영민·배상윤), 그리고 수십년간 영풍과 동업관계에 있었던 최창걸 전 고려아연 회장 등 총 5명을 지목했다.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화두였다. 경북도는 환경오염 문제 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석포제련소 이전을 위한 전담팀(TF)을 구성했다.
지난 10월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부 종합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장형진 영풍 고문은 석포제련소 이전 등과 관련해 정부안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영풍·MBK파트너스 측과 경영권 분쟁을 진행 중인 고려아연에도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고려아연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계획에 제동을 걸면서 자진철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10월 30일 약 2조5000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유상증자 계획 발표 직후 주가가 하한가를 기록하며 앞서 진행한 공개매수 관련 차입자금 2조6000억원을 주주들 돈으로 메우려 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 6일 고려아연에 일반공모 관련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의 친분으로 고려아연 측 우군으로 분류돼 온 한국투자증권이 보유 지분 0.8%(14만8861주)를 모두 처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군 이탈 조짐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 회장과 초등학교 동창으로 우호지분으로 분류됐던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맏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도 투자전문회사를 통해 보유하던 고려아연 주식 약 0.2%(4만1044주)를 대부분 매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려아연 지분 0.7%를 보유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도 일부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가 이상 급등한 상황에 차익을 거둘 기회를 포기했다가 자칫 배임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고려아연의 온산제련소에서 최근 계열사 50대 근로자가 작업중 추락해 숨지는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해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수사에 나선 상황이다. 해당 근로자는 고려아연 계열사인 케이지그린텍 소속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