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매물로 나온 서울 여의도 5성급 호텔 ‘콘래드서울’은 초기부터 시장의 우려를 샀다. 여의도 한가운데에 있는 ‘알짜 자산’이지만 금리가 올라 ‘쉽게 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블랙스톤, 케펠자산운용 등 유명 외국계 투자운용사가 대거 입찰에 뛰어들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콘래드서울은 올해 6월 ARA코리아자산운용에 최종 매각됐다. 매각 대금은 4150억원에 달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호텔산업의 잠재력을 높게 보고 있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3~4성급도 수천억원대에 팔려국내 관광호텔 거래 시장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2~3년 전만 해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오피스로 전환되거나 폐업한 사례가 잇따랐지만, 최근 방한 외국인이 급증하면서 투자 가치가 높은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인 K웨이브 확산으로 한국 여행에 관심이 높아지자 국내에 럭셔리 호텔을 지으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11일 상업용 부동산 종합서비스 기업 알스퀘어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1~3분기 서울·부산·제주 관광호텔 거래 규모는 2조16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3600억원)보다 1조8000억원 급증했다. ‘그랜드하얏트서울’(7300억원) ‘콘래드서울’(4150억원) 등 수천억원대 ‘메가 딜’이 연달아 성사된 영향이 컸다.
5성급뿐 아니라 3~4성급 중소형 호텔 거래도 활발해지고 있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이 갖고 있던 4성급 ‘티마크그랜드 호텔 명동’은 올초 그래비티자산운용에 팔렸다. 매각대금은 2282억원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3년 넘게 주인을 찾지 못하다가 여행 수요가 회복하면서 매각에 성공했다. 3성급 ‘신라스테이 광화문’도 올해 신한리츠운용에 2890억원에 팔렸다. ‘신라스테이 서대문’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조선 서울역’ ‘해운대 L7 호텔’ 등 규모 있는 호텔도 새 주인을 찾고 있다.
국내 호텔 거래 시장의 부활은 방한 외국인 관광객 급증이 가져온 변화다. 코로나19가 터진 직후인 2020년 주요 관광호텔은 객실 예약이 급감하며 실적이 고꾸라졌다. 내국인의 ‘호캉스’ 수요만으론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외국인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객실점유율이 급상승하고 있다. 알스퀘어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 5성급 호텔의 객실점유율은 2019년 대비 95% 수준으로 회복했다. 이들 호텔의 평균 일일 요금(ADR)도 지난해 30만6000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K콘텐츠 열풍…‘몸값’ 더 뛸 듯”업계에선 세계적인 K콘텐츠 열풍에 힘입어 국내 호텔의 몸값이 더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9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46만 명으로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2019년 9월(144만 명)보다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호텔들도 ‘한 달 살기 패키지’ ‘K뷰티 체험’ 등 차별화된 관광 상품으로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호텔 시장의 잠재력이 커지자 해외 럭셔리 호텔 체인들은 직접 한국에 진출하고 있다. 2026년 서울 강남 옛 라마다서울호텔 부지에 들어서는 아시아 최초의 ‘메종 델라노’ 호텔이 대표적이다. 2027년 서울 용산구 옛 유엔군사령부 부지엔 글로벌 럭셔리 호텔 ‘로즈우드’가 조성될 예정이다. 하루 숙박료가 1000만원에 달하는 특급 호텔 브랜드 ‘자누’도 국내에 호텔을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