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의 중국 장자강포항불수강 매각 추진 소식이 지난주 국내 철강업계를 뒤흔들었다. ‘중국 내 작은 포스코’라고 불리며 20여 년간 해외 진출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 제철소까지 매물로 나와서다. 작년에는 1700억원 영업적자를 냈지만 잘나갈 땐 연간 매출 4조원, 영업이익으로 수천억원을 벌었다. 2006년엔 기자도 현장을 취재했다. 연산 60만t의 스테인리스강 제강·열연 공장 준공을 앞둔 시점이었다. ‘리틀 박태준’이란 별명이 붙은 정길수 사장이 당시 “해외 제철소 건설 현장은 총알, 포탄만 왔다 갔다 하지 않을 뿐 전쟁터나 다름없다”고 한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번 매각 추진은 중국 철강 경기 침체 속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중국은 세계 조강 생산량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올해 3분기까지 생산량은 7억6850만t으로, 작년 동기 대비 3.2% 감소했다. 건설 및 부동산 경기 침체 탓에 중국 내 수요가 곤두박질치며 공급 과잉이 발생했다. 상반기 중국 17개 상장 철강사 중 12곳이 적자를 냈다. “위기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길고 차가우며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후왕밍 바오우그룹 회장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중국산 철강은 한국 등 아시아와 유럽으로 싼값에 팔려 갔다. 올 3분기까지 중국의 철강 수출은 8071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2% 증가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제품가격 급락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36.8%, 82.6% 줄었다. 철근이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현대제철은 국내 건설 경기 침체라는 직격탄까지 더해졌다.
8년 전에도 철강업계는 공급 과잉으로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 정부와 철강업계가 나서 선제적인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추진했다. 이때 철강협회 의뢰로 나온 게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구조조정 보고서였다. BCG는 “글로벌 철강 수요는 2030년까지 연 1%대 저성장이 예상된다”며 “중국이 설비를 축소한다고 해도 조강생산 능력 과잉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련 기업의 거센 반발로 최종 보고서에서는 빠졌지만 구체적인 재편안도 담겼다. BCG는 중간 보고서에서 철근은 지역별 그루핑 및 기업별 통폐합을 거쳐 각 공장을 대형화·거점화하고, 후판은 국내 3사에 400만~500만t 규모의 설비 감축을 제안했다. 강관은 기업활력법 등을 통한 사업재편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해 말 철강 시황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자 구조조정 얘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일본도 2000년대 들어 철강, 조선, 정유산업 등에서 혹독한 구조조정기를 거쳤다. 2014년엔 사업재편을 지원하기 위한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제정했다. 한국 기업활력법이 모델로 삼은 법이다. 시행 8년이 된 기업활력법은 중소·중견기업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 그동안 지원한 484곳의 사업재편 중 중소·중견기업이 98%를 차지했다. 일본 산업경쟁력강화법이 신일철주금과 동방티타늄의 티타늄사업 양수도, 미쓰비시중공업그룹 내 상선사업 통합, 이데미쓰코산과 쇼와셀의 정유사업 통합 등 주로 대기업의 사업재편을 지원한 것과 대조된다.
한국 철강·석유화학업계는 중국산 저가 공세로 한계 상황에 내몰렸다. 이제는 한국 정부도 사업재편 효과가 큰 대기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기업 특혜’라는 부담을 이유로 눈치를 볼 상황이 아니다. 지원 대상 여부를 가리는 과잉 공급 판정 기준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사업재편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늦으면 늦을수록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업계가 캐비닛 속에 넣어둔 BCG 보고서를 꺼내 실행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