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보험사들을 불러모아놓고 보험 회계 보수적 가정(원칙 모형)을 채택할 것을 압박했다. 상당수 보험사는 당국이 낙관적 가정(예외 모형)을 허용한만큼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일부는 미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원칙 모형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은 11일 서울 중학동 손해보험협회에서 이세훈 수석부원장 주재로 주요 보험사와 회계법인 경영진 간담회를 열고 새 회계기준(IFRS17) 안정화와 리스크 관리 관련 당부사항을 전달했다.
이날 회의에는 삼성생명, 교보생명, 한화생명, 동양생명, 메트라이프(이상 생보사),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롯데손보, 흥국화재(이상 손보사)가 참석했다.
금감원은 당국이 지난주 발표한 보험회계 개선방안의 핵심인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 가정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일부 회사가 단기 실적 악화를 우려해 원칙이 아닌 예외 모형을 선택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장의 실적악화를 감추고자 예외모형을 선택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무·저해지 보험은 납입 기간 내에 해지하면 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대신 보험료가 싼 상품이다. 저렴한 보험료를 앞세워 보험업계의 주력 상품으로 부상했다.
일부 보험사가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 가정을 높게 잡아 수익을 크게 추정하는 '실적 부풀리기'를 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당국은 해지율 가정 그래프가 L자 모양으로 떨어지는 로그-선형 모델을 원칙으로 하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또 해지율이 보다 완만하게 떨어지는 선형-로그 모델을 예외로 인정하기로 했다.
예외 모형을 택하면 원칙에 비해 이익을 크게 잡을 수 있다. 이에 당국은 보험사가 예외를 택하려면 원칙 모형에 따른 결과를 함께 공시하도록 하고, 현장점검을 통해 적정성을 점검하는 등 원칙 채택을 유도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업체들 가운데 DB손보, 현대해상, 롯데손보 등은 원칙 모형을 적용하면 이익 감소 부담이 너무 커 예외 채택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체 관계자는 "당국이 원칙과 예외를 제시하고 원칙 선택을 압박하는 것은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부 보험사가 예외를 선택하면 다른 보험사들도 예외로 따라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예외 모델은 원칙에 비해 보험료를 10%가량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어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보험사 미래 건전성을 우려한다면 원칙 모델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