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은 윤석열 정부가 현재의 정치적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이 될 수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연금개혁 논의 과정에 참여한 연금 전문가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1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연금 개혁이 최소 5년 뒤로 밀려 (연금 재정에) 치명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위원장과 21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내며 정부의 연금 개혁안 설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연금개혁이라는 정책적 성과를 내면 곤두박질치고 있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도 반등할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예상이다.
정부는 지난 9월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2028년기준 40%)을 42%로 높이는 내용 등을 담은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민연금법 개정의 책임을 진 국회가 각종 정치적 이슈에 매몰되며 연내 연금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김 교수는 여야가 앞서 합의한 보험료율 인상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보험료율 인상으로 재정안정화를 꾀하고, 구조개혁은 더 많은 논의를 거쳐 시행하는 '투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여당은 (국민연금과 다른 연금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구조개혁을, 야당은 (보험료율,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선후의 문제"라면서 "보험료율 인상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야가 이미 합의한 보험료율 인상을 먼저 하고 구조개혁 논의는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며 "'여야가 연금 개혁에 조속히 합의해야 한다'고 국민들이 압박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어 "저출산 고령화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베이비붐세대가 은퇴하기 전에 (보험료율 인상을 통해) 가능한 많이 적립기금을 쌓아야 한다"며 "구조개혁도 반드시 해야하지만 이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합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보험료율 인상을 놓쳐선 안 된다"고 부연했다.
가입자 수 변화, 기대수명 증가 등에 따라 연금액이 조절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후순위로 논의해도 될 문제로 꼽았다. 김 교수는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시기가 오면 자동조정장치가 필요할 수 있다"면서도 "개념의 중요성에 비해 제도화가 시급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자동조정장치는 재정안정화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여야가 대립하는 이슈인 자동조정장치 때문에 보험료율 인상 등 더 시급한 개혁 과제가 발목잡혀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대표적인 재정안정론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는 보험료율 인상을 위해서라면 야당의 주장대로 소득대체율을 소폭 높이는 유연성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재정 추계를 검토해본 결과 소득대체율 42%나 43%, 44%는 기금소진 연도에 있어 큰 차이가 없었다"며 "현재의 여소야대 국면에서 연금 개혁에 합의하기 위해선 소득대체율 카드가 유연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앞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도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여야 합의를 전제로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44%로 높이는 개혁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정부가 검토하기로 한 국민연금 의무가입연령 상향(59 → 64세)과 맞물린 정년 연장 문제에 대해선 "연공서열 임금 체계, 청년 실업률 등과 연결돼 있어 상당한 사회적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경로에 대해 가능한 빨리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끝으로 "연금 개혁의 길은 굉장히 멀고 험난하지만 지금 해야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연금 개혁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번 개혁을 기점으로 추가적인 구조개혁을 이어나간다면 우리나라도 남부럽지 않게 탄탄한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