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커피값 딱 3000원만 냈으면 좋겠다니까요."
삼성동 인근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20대 직장인 김모 씨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코로나19 시기에 잠시 3000원씩 내고 마셨었다. 오늘은 2540원인데, 돈 아껴 웃어야 할지, 기분 참 묘하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가 인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지수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1잔의 가격을 연동해서다. 코스피 지수는 이전 주 금요일 종가를 기준으로 한다. 매주 가격이 달라지는 셈. 참신한 정책 때문인지 카페는 단골 손님으로 붐볐다. 카페 사장이 코스피 지수만 쳐다보는 이유
8일 오전 10시 유수의 대기업과 벤처 기업이 즐비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 매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진한 원두 볶는 향과 함께 메뉴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메뉴판에는 아메리카노 1잔의 가격이 따로 기입돼있지 않다. 매주 달라져서다. 대신 가게 외벽과 메뉴판 상단에 전주 금요일 코스피 종가가 적혀있다.
이날 아메리카노는 2540원에 팔리고 있었다. 1일 코스피 지수 종가 기준이다. 8일 코스피 지수는 2561.15로 장을 마감했다. 다음 주 이 카페의 아메리카노 가격은 20원 오른 2560원이 되는 셈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면 여기에 500원을 더하면 된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이번 주부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40대 직장인 권모 씨는 "요즘 내 주식 통장을 보면 눈물이 나 애플리케이션(앱)에도 잘 안 들어가는데 그래도 여기서 매주 코스피 지수를 알아간다"면서 "원래 가격이란 게 한번 오르면 내려가질 않는데, 여긴 커피가 점점 저렴해진다"고 말했다.
주식 투자를 안 한다는 30대 이모 씨는 "커피 맛이 좋아서 찾는 곳"이라며 "코스피 지수가 갑자기 너무 오르면 나한테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닐 것 같다"면서 웃었다.
2012년부터 이 자리에서 카페를 운영한 이용현 씨에게 '이러한 가격 정책을 펼친 이유'를 묻자 "과거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커피가 좋아 창업하긴 했는데 다른 가게와 차별점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구상한 아이디어"라면서 "당시 코스피 지수가 1950대라 한동안 커피 한 잔을 1950원에 팔았었다"고 전했다.
이 씨는 "처음 이 발상을 떠올렸을 때만 해도 12년 넘는 시간동안 600원밖에 못 올릴 줄은 몰랐다"면서 "코로나19 시기에 3300원까지 올려봤다"고 말했다.
매주 달라지는 가격은 이 씨와 손님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을 터. 그는 "안 그래도 원래는 몇개월에 한 번씩, 또는 '코스피 지수 2000~2500까지는 2000원' 이런 식으로 운영했는데, 지난해 8월부터 경기가 안 좋아져 코스피 지수가 급락하면서, 손님들에게 일상 속 작은 웃음이라도 드리고 싶어 매주 가격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비록 커피값을 올리진 못했지만, 저가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넘치는 카페 산업에서 '차별성'을 살릴 수 있었다고 이 씨는 설명했다. 그는 "커피 판매만으로 가게를 운영할 수는 없다. 원두 판매, 커피머신 컨설팅 등도 하고 있다"면서도 "그래도 이 전략 덕에 단골이 많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 씨는 "가게 문 닫을 때까지 코스피 가격 연동제를 고수하겠다"면서 "코스피가 3000, 4000이 되면 경제 상황이 좋다는 뜻이지 않냐. 그렇게 되면 손님들도 기꺼이 커피값을 내실 테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라며 웃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