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지 않은 손님 온다"…무서운 전망에 개미들 '초비상' [노정동의 어쩌다 투자자]

입력 2024-11-10 12:38
수정 2024-11-10 13:35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4년 만에 백악관에 복귀하면서 '고(高) 환율 시대'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규모 관세 부과와 확장 재정을 불러오는 공약을 내건 데다, 무역 마찰과 지정학적 우려 등도 강(强)달러를 부추기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선 원·달러 환율 1400원대에 대한 '뉴 노멀'(새로운 표준) 전망을 경계하면서도 상승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을 것이라는 데에는 대체적으로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10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8일 원·달러 환율은 10.2원 내린 1386.4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앞서 트럼프 당선이 가시화된 지난 6일 원·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 동안 17.6원 급등했다. 이어 야간 거래에서 추가로 오르며 지난 4월16일 이후 약 7개월 만에 처음으로 1400원선을 넘기기도 했다. 원·달러 환율이 종가 기준 1400원을 넘은 시기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비롯해 미국이 긴축 기조를 강화했던 2022년 등 세 차례에 불과하다.


미국 대선 결과가 공개된 지난 7일에는 5.8원 오른 1402원에 개장했다. 시가 기준으로도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은 것은 2022년 11월 이후 처음이었다. 장중에는 달러가 더 강세를 보이면서 환율이 1404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다만 지난 8일 미국 중앙은행(Fed)이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0.25% 인하에 나서자 원·달러 환율은 1380원대 수준으로 진정됐다.

최근 원·달러 환율 단기 급등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비롯해 상·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의 승리가 나타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보호무역주의 확대와 감세 정책 등의 공약이 현실화할 것을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감세로 인해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커지면 미국 달러화 표시 국채 발행이 늘어나고 국채금리가 오르면서(국채가격은 하락) 달러화 강세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보호무역주의 확대에 따라 관세가 인상될 경우 인건비 상승 등 인플레이션을 부추겨 미 Fed의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롬 파월 미 Fed 의장은 지난 8일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가면서 "단기적으로 볼 때 선거가 우리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사퇴를 요구할 경우 그만둘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안 하겠다"고 답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2월 방송에 출연해 "내가 당선된다면 파월 의장은 직위를 잃을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무역 분쟁과 지정학적 갈등도 강달러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은 우리 수출에 타격을 입힌다는 점에서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한다. 트럼프 대통령 1기 당선 때도 원·달러 환율은 2016년 11월9일부터 14일까지 4거래일간 37원 가까이 급등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 당시에도 보호무역 강화, 관세 인상을 강하게 주장했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올해 연말까지 트럼프 후보 당선에 따른 기대감과 불확실성이 공존해 강달러 압력의 영향권이 이어질 수 있다"며 "원·달러 환율의 1차 상단은 1400원, 2차 상단은 1420원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도 "당장은 정책에 이목이 쏠려 강달러 국면이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며 "원·달러 환율의 단기 상단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에 올랐던 고점 수준인 1440원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 1기 재임 내내 원·달러 환율이 상승 압력만 받은 것은 아닌 것처럼 이번에도 1400원대에서 오래 머물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도 있다. 외환당국의 개입 의지와 금리인하 사이클에 들어선 미 Fed의 정책 때문이다.

김상훈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들은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서로 상쇄되는 부분이 있다"며 "또 2016년과 달리 금리인하 사이클이라는 점에서 원·달러 환율은 상승 뒤 완만한 하락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신승철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도 지난 7일 국제수지 잠정 통계 발표 브리핑에서 "환율이 높아져도 수출 증가에 기여하는 것은 크지 않다"며 "환율이 많이 오르면 원유 등 원자재 수입액이 늘어 경상수지나 무역수지 흑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만, 국제 유가나 국내 원유 수요 등에 더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환율 상승이 경상수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안팎의 고공 행진을 이어간다면 오는 28일 예정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달러화 가치가 높은 상황에서 국내 기준금리를 섣불리 낮출 경우 원화 약세를 추가로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이번 FOMC 결정으로 한은이 11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가계대출이 좀 더 급격하게 줄어들어 정상화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 아니라면 현재 물가나 경기 상황만 반영해 금리를 빠르게 내리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