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상장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기업공개(IPO) 기업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술특례 IPO 기업을 겨냥한 거래소 심사가 깐깐해지면서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올해 IPO 기업 46곳이 거래소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자진 철회하거나 미승인 결과를 받았다. 이는 종전 최대치인 2021년 38곳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자진 철회한 기업 대부분은 잠정적 미승인 통보를 받은 뒤 철회를 택한 것이어서 실질적으로는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셈이다.
이들 기업의 절반가량은 기술특례 상장을 노렸다. 특례 상장 제도는 적자 기업이어도 기술력과 미래 성장성이 있다면 자금 조달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술성 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아도 일정 수준의 매출 또는 수주 계약을 증명하지 못하면 거래소 문턱을 넘기 어려워졌다. 기업과 주관사 사이에서는 일반 IPO 기업과 비슷한 매출 및 수익성을 입증해야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IPO업계 관계자는 “혁신 기업을 키우겠다며 도입한 특례 상장 제도에서 문제가 반복되자 최대한 보수적 기조로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파두와 이노그리드 사태 이후 특례 상장 기업에 거래소의 경각심이 높아졌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기술력뿐 아니라 기술의 시장성까지 상세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술력과 성장성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철저한 관리가 중요 과제로 부각되면서 기술특례 상장 제도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 모습이다.
이들 기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털(VC) 등 투자사도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특례 상장 문이 갑작스레 좁아지면서 마땅한 투자금 회수 수단을 찾지 못해서다. VC업계 관계자는 “장외 시장에서 지분을 매각하려 해도 자금 회수 기회가 막힌 기업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