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효성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HS효성이 계열 분리 후 첫 신사업으로 ‘실리콘 음극재’를 낙점했다. 배터리 4대 소재 중 하나인 음극재를 흑연 대신 실리콘으로 만드는 이 제품은 에너지 용량이 흑연 음극재보다 10배가량 커 음극재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업계에선 HS효성이 양극재에 이어 음극재 시장에도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배터리 소재를 타이어코드에 이은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잡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HS효성 산하 HS효성첨단소재는 이달 7일 이사회를 열고 벨기에의 배터리 소재업체 유미코아에 448억원을 사모사채 방식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사모사채는 발행 기업(유미코아)이 사업 파트너 등 특정 기업(HS효성)을 콕 집어 채권을 매각하는 방식이란 점에서 두 회사가 사실상 협력관계를 맺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HS효성첨단소재가 “실리콘 음극재 사업을 검토하기 위해 투자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분석에 힘을 보탰다.
1805년 설립된 유미코아는 세계 2위 양극재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39억유로(약 5조8000억원). 이 회사는 고객사와 실리콘 음극재 샘플을 테스트하고 있다. 실리콘 음극재는 에너지 용량이 흑연 음극재보다 10배가량 큰 데다 급속 충전에 적합하다는 점에서 차세대 배터리 소재로 꼽힌다. 포스코그룹, LG화학, SKC, SK머티리얼즈, OCI,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등 거의 모든 배터리 소재 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든 이유다.
업계에선 실리콘 음극재 개발 및 생산에 상당한 자금이 드는 만큼 HS효성과 유미코아가 다양한 형태로 협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배터리 소재사업은 HS효성을 이끄는 조현상 부회장(사진)이 주도하고 있다. 고(故) 조석래 명예회장의 삼남인 조 부회장은 계열 분리 전인 2022년 메르세데스벤츠 딜러사인 HS효성더클래스을 통해 양극재 기업 우전지앤에프의 지분 60%를 327억원에 매입했다. 이번 투자를 시작으로 향후 음극재 관련 기술과 생산시설을 확보하면 배터리 4대 소재 중 2개를 품는다.
업계 관계자는 “조 부회장은 전기차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빠진 지금이 배터리에 투자할 적기라고 판단한 것 같다”며 “HS효성첨단소재가 세계 1위인 타이어코드에 이어 미래 먹거리를 배터리 분야로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향후 HS효성의 투자 범위와 규모가 더 넓고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 부회장이 그룹 외연을 넓히기 위해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주문하고 있어서다. 그룹의 주력인 HS효성첨단소재가 올 1~3분기에 173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데다 자금 여력도 있는 만큼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기업을 인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2차전지 소재 외에 반도체 소재 등이 M&A 대상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