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민간 경제연구원장 등 국내 경제학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2기 시대에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보호주의 통상정책이 시행돼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업의 어려움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공약인 대규모 감세 정책과 관세 부과에 따른 강(强)달러 및 고금리 현상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중 갈등 격화에 대비해 국내 기업은 공급망 다변화를 서두르고, 정부도 경제안보 강화를 위한 새로운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자무역체제 복원 희박한국경제신문이 8일 국책·민간 경제연구원장 등 경제 전문가를 대상으로 긴급 인터뷰한 결과 이들은 트럼프 2기 출범으로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무역체제가 복원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적 기본관세, 중국산 제품에는 6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이 현실화하면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가 일제히 둔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트럼프 당선인은 감세를 위한 재정 소요를 무역 상대국에 대한 보편관세로 충당하려 한다”며 “관세 부과는 협상 우위를 점하려는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재정수입 수단으로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관세가 부과되면 국내 기업은 공급망을 다변화할 수밖에 없다”며 “다자협정뿐 아니라 복수 간 및 양자 협정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강력한 보호주의 통상정책이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내는 한국 기업에 집중될 수 있다”며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핵심 원자재 등 전략물자의 해외 의존도를 재점검하고, 공급망 다변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 정 원장의 설명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트럼프 1기 때도 미국 경제는 좋은 반면 세계 경기는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며 “수출 주도형 국가인 한국의 성장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미·중 갈등 격화로 세계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 기업들은 서둘러 투자를 줄일 것”이라며 “이런 후폭풍이 당장 내년부터 현실화해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환율 안정에 시간 걸릴 것”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인 법인세율 인하에 대비해 국내에서도 현행 24%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1기 집권 때인 2017년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인하한 데 이어 미국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추가로 15%까지 낮춘다는 계획이다.
이영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트럼프 1기 당시 법인세율 인하가 미국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주식시장도 호황으로 이끈 계기가 됐다”며 “미국이 법인세를 낮추면 우리도 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법인세율을 계속 유지하면 경제 성장이 어려울 뿐 아니라 세수 확보조차 힘들 수 있다는 것이 이 원장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를 맞아 당분간 강(强)달러와 고(高)물가 현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곽노선 한국금융학회장은 “국채 발행을 통해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달러화 강세는 불가피한 현상”이라며 “물가 상승 압력도 커져 당분간 금리 인하 조치가 예상보다 지체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양수 대한상공회의소 SGI원장은 “강달러는 당분간 불가피하지만 트럼프 입장에선 수출 경쟁력을 위해선 무작정 달러화 강세를 지켜볼 수만은 없다”며 “시간이 지나면 달러화 약세에 따라 원·달러 환율도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강경민/박상용/이광식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