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옥에 다녀왔다. 말하자면, 그건 정말 멋졌다.(I have been to hell and back. And let me tell you. It was wonderful.)’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일본 도쿄 롯폰기 모리빌딩 53층의 모리아트뮤지엄. 작가 이름을 내세운 전시명 뒤에 붙은 부제가 눈을 사로잡는다. 지옥에 다녀온 여인, 85세가 되어 “나의 모든 여정이 멋졌다”고 회고하는 부르주아. 전시 부제는 그가 가로·세로 50㎝가 채 안 되는 손수건에 자수로 새긴 후기 작품 ‘Untitled’(1996)의 텍스트에서 따왔다. 이 부제는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문장임이 틀림없다.
부르주아는 191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99세가 되던 2010년 미국 뉴욕에서 작고했다. 70년에 걸쳐 설치, 조각, 드로잉, 회화 등 다양한 매체로 독보적인 형식을 구축했다. 그의 작품 안엔 남성과 여성, 수동과 능동, 구상과 추상, 의식과 무의식 등의 양극성이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대중은 ‘마망‘(maman)이란 이름의 거대한 거미 조각으로 그를 기억하지만, 이번 전시는 한 인간이 어린 시절 겪은 복잡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어떻게 예술로 승화하고 극복하며 생존해 왔는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한다. 총 세 챕터에 걸쳐 100여 점을 전시했는데, 그동안 쉽게 볼 수 없던 회화와 영상, 사진 아카이브 등이 거미줄처럼 정교하게 얽혀 있다. 1장 ‘나를 버리지 마세요’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2장 ‘지옥에 갔다가 돌아왔다’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3장 ‘하늘에서의 복원’은 깨진 관계의 회복과 정서적 해방에 관해 말한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누구인가
부르주아의 어머니에겐 평생 바늘과 실이 있었다. 태피스트리(벽걸이용 대형 직물) 수선과 판매를 가업으로 하던 집안의 둘째 딸은 여덟 살 때부터 엄마를 매일 도왔다. 부르주아는 사춘기 시절 아버지가 자신의 가정교사와 한 침실에서 나오는 걸 목격한 뒤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를 연민하게 됐다. 어머니는 부르주아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어머니를 간병하며 얻은 고립감과 불안은 그의 10대를 장악한 감정이었다.
19세 때 소르본대에서 수학을 공부하던 그는 어머니를 잃고 계속되는 슬픔을 예술 세계에서 달랬다. 1938년 미국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한 뒤 뉴욕으로 이주해 1940년대 중반부터 전시회를 열었다. 유럽에 그의 이름을 알린 건 198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쿤스트베라인에서 한 첫 개인전 때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미국 대표로 참가한 뒤 주요 개인전을 열었지만, 그의 명성은 사망 후 더 높아졌다. 거의 평생을 뉴욕 작업실에 틀어박혀 은둔형 작가로 작업하다가 70세가 넘어서야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거미여인의 그림과 ‘아버지의 파괴’
부르주아는 조각과 설치로 더 유명하지만 이번 전시에선 부르주아가 뉴욕으로 이주한 후 첫 10년간 그린 그림이 대거 전시됐다. 최근 몇 년간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2022),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미술관(2023~2024) 등의 전시회에서 집중적으로 재평가된 작품들이다. 10점은 아시아 최초 공개다.
1938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 그린 회화 속엔 그 후 60년 동안 부르주아가 탐구한 모든 작품의 씨앗이 숨어 있다. 그의 조각보다 회화에 더 많은 시간을 머물며 감상해야 하는 이유다. 자화상, 집, 프랑스에 남은 가족에 관한 생각들, 자연과 건축의 도상학,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등이 다채롭다. 이 마지막 그림들은 1960~1970년대 페미니즘 미술 운동의 지지를 받기도 했는데, 정작 부르주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는 것에 관해 얘기할 뿐이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여성’을 위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늘 나 자신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에게 예술은 카타르시스다.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작업이다.”
초기 회화 중 부르주아의 ‘팜 메종’ 시리즈(1946~1947)와 ‘페르소나’ 시리즈(1946~1954)는 건축 구조물과 여성을 합성한 작품으로 집을 떠나 다른 집으로 옮겨간 자신의 상황을 초현실적으로 묘사한다. 부르주아의 말과 글, 영상으로 다시 보다
부르주아는 재능 넘치는 작가이기도 했다. 방대한 일기와 편지, 현재 정신분석학 책으로 엮인 수백 편의 텍스트를 남겼다. 불안, 분노, 질투, 살인적인 적대감, 죄책감, 연민 등 복잡한 감정과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글이 전시장 곳곳에 놓였다.
그의 말은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제니 홀저(74)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 첫 전시장을 장식했다. 홀저는 부르주아의 글에서 깊은 영감을 얻어 1990년대 후반부터 부르주아와 우정을 쌓았고, 2022년 스위스 바젤에서 관련 전시를 기획했다. 이번 전시에선 홀저가 제작한 움직이는 텍스트 영상을 전시장 벽면에 투사하고, 그 안에 부르주아의 소형 조각을 두는 방식을 택했다.
전시장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오래 머무는 방이 있다면 금색 청동 조각 ‘Arch of Hysteria’(1993)가 걸린 방이다. 부드럽게 뒤로 휜, 그러나 얼굴 없이 공중에 매달린 이 인체 조각은 부르주아 자신의 몸을 본뜬 것이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시작했을 때 몸이 공중으로 휘는 왜곡을 보이는 여성의 히스테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부르주아는 억압된 기억이나 심리적·성적 트라우마가 이유일 것으로 추정했다. 매달린 몸은 연약함의 표현이자 불안정의 개념이기도 했다. 이 조각은 도쿄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53층 미술관 통창의 빛을 받아 한없이 반짝이지만, 언제든 회전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로 다가온다.
모리아트뮤지엄은 이번 전시의 상품 기획에도 공을 들였다. 거미 배 속의 흰 알을 연상시키는 밀크아몬드, 겔랑의 샬리마르 향수가 뮤지엄숍에서 전시·판매되고 있다. 마지막 장에 전시된 조각 작품 ‘거미’(1997)에는 부르주아가 소중히 간직한 소지품과 함께 샬리마르 향수병도 새장 안에 함께 놓였으니 놓치지 말것. 마지막 방에선 향기를 체험해 볼 수도 있다. 미술관 내부의 레스토랑 ‘더 선 & 더 문’에선 ‘루이스 부르주아 코스’를 전시 기간 메뉴로 준비한다. 1977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발간한 ‘예술가의 요리책’에서 부르주아가 소개한 프랑스와 이탈리아 전통 요리법을 재해석한 코스로, 거미와 나선 등 부르주아의 상징적인 모티프를 활용한 메뉴를 선보인다.
전시 시작과 끝에 있는 부르주아의 초상 사진을 오래 바라보길 추천한다. 평생을 괴롭힌 모든 트라우마에서 비로소 해방된 것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은 여운이 짙다.
“우리는 매일 과거를 잊어버리거나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이 힘든 과거와 타협할 수 없다면 그때부터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난 성공이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성공한 것이 하나 있다면 사람들의 관심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도쿄=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