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일 취임 후 처음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김건희 여사 문제를 비롯한 수많은 악재가 쌓일 대로 쌓이며 실제 위기로 나타나고 있어서다. 전향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여권의 요구에는 '대국민 사과'를 통해 화답했으나, 김 여사 특검을 추진하는 야당에는 여전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윤 대통령이 처음 고개 숙여 사과한 건 2021년 12월, 대선후보 시절이다. 이때도 김 여사 논란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담화문 낭독에 이은 질의응답까지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총 2시간 20분이었다. 대통령실의 예고대로 윤 대통령은 주제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기자들의 모든 질문에 답했다. 오히려 "오늘은 답을 좀 길게 하겠다"고 윤 대통령 스스로 자세한 설명을 자처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낭독할 담화문 초반부에 국정 성과가 아닌 대국민 사과 대목을 담았다. 그 이유에 대해 윤 대통령은 "아내가 가서 국정 성과만 말하지 말고 사과를 좀 제대로 많이 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것은 변명하는 자리가 아니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다 국민 여러분께 먼저 죄송하다"면서 연단 옆으로 나와 사과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국민 앞에 고개와 허리를 숙여 사과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어진 기자회견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으로 진행됐다. 대부분 질문은 정치 현안에 집중됐으며, 특히 김 여사 관련 사안에 쏠렸다. 먼저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김 여사의 공식 활동을 보좌할 제2부속실을 정식으로 출범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제2부속실에서 잘하면 리스크는 줄어들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김 여사가 대외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대외활동은) 결국 국민들이 좋아하시면 하고 국민들이 싫다고 하면 안 해야 한다. 지금의 여론을 충분히 감안해 외교 관례와 국익상 반드시 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중단해 왔고,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며 "대외활동 자제가 아니라, 저와 핵심 참모 판단에 국익과 관련해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닌 활동은 사실상 중단해 왔고 앞으로도 중단할 것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의 국정 개입 의혹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대통령 부인은 대통령과 함께 선거도 치르고 대통령을 도와야 하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참모를 야단치면 (부인이) '당신이 부드럽게 하라'고 하는 것을 국정 관여라고는 할 수 없다"며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도와 선거도 치르고, 국정을 원만하게 하길 바라는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하면 국어사전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김 여사에 대한 야권의 국정 개입 의혹 공세는 '악마화'라는 시각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때부터 저를 타깃으로 하는 것이지만, 제 집사람도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 제 처를 많이 악마화시킨 것은 있다"며 "그러나 가릴 건 명확하게 가려야 한다. 제 아내가 잘했다는 게 아니라, 더 신중하게 매사에 처신해야 하는데 이렇게 국민께 걱정 끼쳐 드린 건 무조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야당이 추진하는 김 여사 특검에 대해선 '정치 선동', '인권 유린', '반헌법적 발상'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먼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가족에게 특혜를 준다는 것은 국법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특검에 반대하는 자신의 주장은 결코 배우자에 대한 방어 논리가 아니라는 것을 전제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특검을 국회가 결정해 임명하고 방대한 수사팀을 꾸리는 나라는 없다. 명백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삼권분립 체계에 위반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2년 넘도록 수백명의 수사 인력을 투입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을 조사하고, 기소할 만한 혐의가 나올 때까지 수사했지만, 기소를 못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김 여사가 억울한 마음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자기를 의도적으로 악마화를 하네', '가짜뉴스가 있네' '침소봉대를 해서 억지로 만들어 내네' 그런 억울함도 본인은 가지고 있겠지만, 그것보다 국민들 걱정 끼쳐 드리고 속상해하시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다만 "저와 제 아내의 처신이 올바르지 못했다. 더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설에 대한 질문에서 갈등의 실체는 인정한 것으로 해석됐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정부대로, 당은 당대로 국민을 위해서 가장 유능한 정부, 가장 유능하고 발 빠른 당이 되기 위해 열심히 같이 일하다 보면 관계가 좋아지지 않겠냐"며 "개인적 감정을 갖고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공동의 과업을 찾아 나가고 정치적 이익을 추구해 나갈 때 강력한 접착제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통화 녹취 폭로로 논란이 된 선거 브로커 명태균씨와 관련된 질문에서는 "부적절한 일을 한 것도 없고, 또 감출 것도 없다"면서 공천 개입, 여론조작, 창원국가산단 개입 등 명씨와 자신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을 모두 일축했다. 대통령 취임 후 연락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통상적인 축하 인사 차원에서의 연락만 있었다고 답했다.
최근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는 국정 지지율에 대해선 "축구선수는 전광판 안 보고 공만 보고 때려야 한다는 얘기를 선거 때부터 계속했다. 그런 제 마음에 달라진 것은 없다"면서도 "변화와 쇄신, 유능한 모습 이런 것들을 국민께 보여드리고 대구·경북 지역에 계신 분들, 전체적으로 국민들께서 속상해하지 않으시도록 잘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