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맨' 트럼프, 韓증시 취약점 건드리나…"수출株 타격"

입력 2024-11-07 08:26
수정 2024-11-07 08:27

더 강력해진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트럼프노믹스 2기'가 예고되면서 국내 증시에서 관세에 취약한 수출주(株)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국내 증시를 대표하는 업종에 악재로 작용하면서 코스피 불확실성을 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 정책에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2차전지, 자동차, 에너지주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LG에너지솔루션이 7% 밀렸고, POSCO홀딩스(-5%) 삼성SDI(-6%) 현대차(-4%) 기아(-2.1%)도 하락했다.

반도체 업종에선 삼성전자가 0.5% 하락하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인공지능(AI) 반도체 칩 수혜를 보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주가 상승 영향으로 하락을 방어했다.

수출주를 팔아치운 건 외국인 투자자들이었다.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전날 총 1690억원을 순매도했다. 기관이 910억원, 개인 투자자가 400억원을 순매수하며 방어에 나섰지만 하락을 막지 못했다. 외국인의 '팔자'가 거세지면서 이날 달러당 원화값은 7개월 만에 1400원을 돌파했다.

당장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는 2차전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폐지 가능성이다. 화석연료 등 전통적인 에너지와 내연기관 자동차에 우호적인 트럼프 당선인이 유세 기간 미국 내 배터리 생산·판매 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없애겠다고 선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당장 올 3분기 IRA에 따른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금액 4660억원을 통해 적자를 피했다. 최근 삼성SDI는 3분기 영업이익 1299억원의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고 발표하면서도 "내년부터 스텔란티스가 전기차 판매를 본격화한다"며 AMPC 수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AMPC는 미국에서 첨단 기술로 배터리 등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면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다.

트럼프 당선인이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칩스법) 폐기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는 점도 부담이다. 그는 유세 기간 팟캐스트에 출연해 '칩스법'에 대해 "정말 나쁜 거래"라고 비판한 바 있다. 칩스법 지원금은 아직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를 철회할 수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총 170억달러(약 23조8000억원)를 투자해 4나노 공정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면서 단계별로 64억달러(약 8조8000억원)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받기로 했다. SK하이닉스도 4억5000만달러(약 6200억원)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받는다.

업계에선 반도체의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관세가 면제되고 있지만 트럼프 2기 정부에선 국가안보를 이유로 무역 확장법 232조, 불공정 무역 관행을 이유로 301조를 적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 1기 당시 사문화된 무역확장법 232조를 들고 나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20%의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이후 301조를 통해 불공정한 무역 상대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산 제품에 최대 25%의 관세 폭탄을 부과했다.

자동차에선 보편 관세가 부담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보편적 기본관세 10~20%, 중국 수입품에는 60%를 관세로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출액은 지난해 709억달러(약 99조원)고, 북미 지역 수출액은 370억달러(약 51조6000억원)에 이른다. 관세가 10%만 부과돼도 부담이 조 단위로 커진다. 자동차 역시 그동안 한·미 FTA에 따라 한국에서 생산된 차는 무관세 혜택을 받아 왔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165만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미국 판매 차량 가운데 국내 생산 비중이 여전히 절반 이상이다. 무엇보다 고부가가치 차종은 대부분 국내 울산공장에서 생산하는 중이라 관세부과만으로도 수익성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선 트럼프 2기 정부가 실제 이 같은 관세 정책을 실행할 경우 현대차에 월 2000억~4000억원, 기아에는 1000억~2000억원의 부담이 추가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시 미·중 무역갈등의 피해국으로 지목됨과 동시에 주요 업종들이 민주당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혜택이 사라질 것에 대한 우려로 약세를 나타냈다"며 "다만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으로 언급했던 발언들이 실제 투자자들의 우려했던 시나리오로 이어지는지 여부는 추가적 확인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인은 한·미 FTA를 최악의 협정으로 꼽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물건을 만들어 미국에 파는 기업에 관세 부과의 불확실성이 적용될 수 있어 우리에게 좋을 것이 많지 않다"며 "이 때문에 당분간은 기술주보다 내수주와 중소형주 중심으로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