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 투표가 마무리되기 시작한 6일 오전. 서울 외환시장과 채권시장은 다소 여유로운 분위기로 출발했다. 하지만 개장 직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원·달러 환율과 국채 금리는 큰 폭으로 반등했다. 대규모 감세, 보편 관세, 미국 우선주의 등 트럼프 공약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강달러·고금리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크게 늘어난 결과로 분석된다.○하락 출발 후 급반등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10시30분 기준)은 1400원50전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은 것은 지난 4월 16일 장중 1400원을 찍은 이후 처음이다.
환율은 전날보다 4원60전 하락(원화 가치는 상승)한 1374원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합주 조지아에서 우세를 보인다는 소식이 나오며 환율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펜실베이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앞서기 시작한 낮 12시께에는 환율이 1399원70전까지 올랐다. 이날 장중 변동 폭은 25원70전에 달했다. 주간 거래(오후 3시30분) 종가는 1396원대였다. 시장에선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앞두고 외환당국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이 있었을 것으로 봤다.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가 확정되자 야간 거래에서 1400원을 돌파했다.
이 같은 환율 변동 흐름은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일제히 나타났다. 달러화지수는 이날 오후 105를 터치한 후 104대 후반에서 주로 거래됐다. 전날 103대 중반까지 내렸다가 아시아 장에서 반등했다.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53엔까지 올랐다.
채권시장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벤치마크로 여겨지는 미국 국채 수익률이 아시아 장에서 0.1%포인트 넘게 오르며 우리나라 국고채 금리도 동반 상승했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12%포인트 하락(채권 가격은 상승)한 연 2.906%에 처음 거래됐다가 이내 상승 전환했고, 전날보다 0.042%포인트 오른 연 2.960%에 거래를 마쳤다. 5년 만기 금리는 0.052%포인트 오른 연 3.023%에, 10년 만기 금리는 0.061%포인트 뛴 연 3.134%에 마감했다.○관세 부과·재정 적자 확대 부담원·달러 환율과 국채 금리가 일제히 상승한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 공약에 따라 강달러와 고금리가 당분간 계속 나타날 것으로 본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섰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진하는 대규모 감세 정책은 미국 재정 적자를 큰 폭으로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 발행을 크게 늘리면서 장기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달러 강세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조적으로 원화 약세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환율이 1400원을 넘는 현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외환당국으로서도 환율 상승을 막을 방법이 없고, 변동성 확대에 개입하는 정도일 것”이라고 짚었다.
감세와 함께 글로벌 보편 관세 10%가 부과될 가능성도 부담이다. 교역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미국 물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률을 관리하기 위해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가 지연되면서 국채 금리가 더 높아질 수 있다. 트럼프 집권으로 글로벌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는 것도 한국엔 부담이다. 불확실성이 커져 위험 회피 심리가 확대되면 원화와 국고채 가격이 크게 낮아질 수 있어서다.
다만 향후 시장 흐름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최근 미국 국채 10년 만기 금리는 연 3.6%에서 많이 올랐다”며 “지속적인 상승은 제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