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얼굴, 얇은 팔다리, 통통한 몸 …
어딘가 몸의 균형이 어긋난 인물들이 캔버스 위에서 익살스런 포즈를 취한다. 웃음을 짓는 그림 속 인물들은 자신의 머리 위에 커다란 카세트를 얹어두기도 하고, 반짝이 옷들로 치장한 채 강아지와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두 인물이 나란히 손잡은 채 관객을 바라보는 그림. 그 앞에 똑 닮은 2명의 남자가 나란히 섰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온 아티스트 듀오 오스제미오스다.
포르투갈어로 ‘쌍둥이'라는 뜻을 가진 그룹명 ‘오스제미오스’에서 알 수 있듯, 두 사람은 1974년 같은 날 세상에 태어났다. 일란성 쌍둥이 형제 구스타보 판돌포와 오타비오 판돌포가 모여 아티스트 팀을 만든 셈이다. 이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브라질 상파울루 길거리에 그래피티 작품을 그려넣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래피티 외에도 조각, 회화, 설치작품 등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며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스트리트 아티스트 중 한 팀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지난 8월 미국 워싱턴 허쉬혼미술관은 개관 50주년 기념전으로 오스제미오스를 조명했다. 이들을 초청해 대규모 회고전을 열어주면서다. 무려 900점이 넘는 작품들을 미술관 전체에 ‘깔아놓고‘ 오스제미오스 형제의 30년 작업 일대기를 훑었다. 비주류 문화로 여겨졌던 스트리트 아트가 미국을 대표하는 대형 미술관을 점령한 것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쌍둥이 형제, 오스제미오스가 한국 전시를 열고 관객을 만난다.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 갤러리에서 이뤄지는 전시 ‘포털 오브 드림즈’를 통해서다. 2020년에 이어 2번째 한국 개인전이지만, 형제가 한국을 직접 찾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첫 전시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오스제미오스가 이번 전시에서 내세운 메시지는 '꿈'. 형제가 꾸는 ‘꿈의 공간‘을 리만머핀에서 실현하겠다는 생각으로 전시장을 꾸몄다. 두 사람은 실제 같은 날, 같은 밤, 같은 꿈을 꾼 경험이 많았다고 한다. 일어나 꿈 이야기를 하면 놀라울 정도로 모든 내용이 일치한 경우도 있었다. 관객에게 이 놀라운 경험을 그림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형제의 목표다.
전시 개막일 리만머핀에서 직접 관객을 마주한 오스제미오스는 “우리의 그림은 하나의 포털과도 같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형제는 “관객이 우리 그림을 통해 상상력 저 너머로 뛰어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그곳에서 현실과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모두 올해 제작된 신작이다. 그간 여러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오직 이번 한국 개인전만을 위해 작업한 그림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상파울루 길거리에서 겪은 힙합, 패션 등 다양한 문화를 캔버스 안으로 옮겨왔다.
모든 그림의 배경은 추상적이다. 무지개가 캔버스를 메우기도 하고, 인물과 합체하듯 연결되기도 한다. 오스제미오스는 추상적인 배경에 대한 설명도 늘어놓지 않는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림 속 각각의 요소와 배경이 무엇을 의미할까 스스로 상상하며 답을 찾게 만들기 위해서다. 관객이 저마다 내리는 정의가 궁금하다고도 했다. 이들이 매번 “모든 우리 작품의 해설은 보는 이들의 내면에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오스제미오스는 모든 회화 작업을 스프레이 페인팅으로만 한다. 인물 외곽을 그린 섬세한 얇은 선까지도 붓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직 스프레이로만 표현한다. 이들이 그래피티를 시작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오랜 기간 이어 온 기법이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답게 작업을 할 때는 색 조합, 구성을 모두 즉흥적으로 짠다. 그림 위 반짝거리는 질감을 만들기 위해 스팽글도 붙였는데, 알갱이 하나하나를 직접 글루로 붙였다. 그림 속 캐릭터가 입은 의상에도 신경썼다. 패션 디자이너가 옷을 만들듯 각 인물의 개성에 맞게 모두 다른 디자인을 그려넣었다.
모든 작품에는 형제가 사랑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존재가 강아지인데, 이번 전시에서는 모든 작품에 강아지가 그려져 있다. 1990년대 이들이 실제 키우던 강아지다. 형제가 길에서 발견해 키우던 가족과도 같은 존재다. 오스제미오스도 “강아지가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절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됐는데, 이것도 우연이자 인연이 아닐까“라며 웃었다. 이밖에도 새와 말, 고래 등 다양한 동물이 작품 속에 등장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작가의 취향을 표현한 것이다.
전시장 한쪽 벽을 채운 작품엔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머리 위에 라디오가 씌워졌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음악에 둘러싸여 살아온 작가들의 인생을 표현했다. 이들은 "우리는 그림 속의 풍경, 날씨, 냄새까지 표현하려고 노력한다"며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끔 하려면 보이지 않는 것까지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오스제미오스를 지탱하는 영감의 원천은 ‘삶’이다.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본 오로라, 어젯밤 꾼 꿈, 어머니의 이야기 등 매일이 이들에게는 영감으로 넘쳐난다. 경험과 상상을 결합해 작품이 탄생한다.
형제는 캔버스를 하나만을 놓고 대화 없이 주고 받으며 그림을 그려도 작품이 완성될 만큼 한 몸처럼 움직인다. 어떤 말과 의견 교환 없이도 100%의 시너지가 나온다고 했다. 전시는 12월 28일까지다.
최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