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둔 벗을 헤아려보니, 선뜻 떠오르지 않아 쓸쓸하다. 북향 하늘을 가로지르는 쇠기러기 떼가 돌아오는 가을이면 불현듯 그립고 흠모하는 벗이 아주 없지는 않다. 젊은 시절 밤새 호기롭게 술을 마시며 기쁨을 과장하던 벗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어떤 벗은 소식이 끊겨 생사조차 알 수가 없다. 안타깝지만 세월이 가면 우정의 빛도 덧없이 바래지는 법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음주가무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 누군가 술자리에 불러도 더는 나가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도 싫지 않던 벗과 사이가 벌어진 데는 내가 내향형인 탓도 작용했을 테다. 기꺼이 짐을 나누어 지는 사람
만주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제 시에서 어린 시절의 친구인 패, 경, 옥 같은 이름을 부른다. 잠에서 깨어난 새벽, 벗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범석, 용훈, 명철, 영호, 민용, 한배, 명용, 형진, 재하, 정균, 기천, 승현, 강일, 국환, 형우, 동수, 기붕…. 내 삶을 영예롭게 한 벗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리는 전후 폐허에서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다. 눈떠보니, 하필 조국은 미국의 구호물자에 기대어 나라 살림을 꾸리는 가난한 나라였다. 대개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근면함으로 경쟁과 시련을 뚫고 오늘에 이르렀다. 어떤 친구는 이민을 가고, 상학이와 용태는 벌써 세상을 떴다. 남은 이들은 대학교수, 은행지점장, 대기업 이사, 화가, 테너 가수, 자영업, 교사, 중학교 교장, 고위 관료 등으로 저마다의 직종에서 제 구실을 하며 반듯하게 잘 살았다.
친구란 오래 사귀고 신뢰 속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서로를 향한 덕이 있어야 하고, 상대에게 기쁨의 존재로 오롯해야 한다. 두터운 유대감에 기대어 무언가를 도모하면 즐겁고, 오래 못 만나면 그리워지는 사람을 친구라 한다. 제 필요나 갈망을 먼저 채우려는 사람, 잔꾀를 내어 바르지 않은 일에 끌어들이는 사람, 걸핏하면 속이려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배고플 때 주먹밥 한 덩어리를 반으로 떼서 주는 사람, 찬비 올 때 한 우산 아래 어깨를 맞대고 걷는 사람, 한쪽이 곤경에 처할 때 기꺼이 그 짐을 나누는 사람, 기쁠 때는 기쁨을 나누고 슬플 때는 슬픔을 나누는 사람이 친구다. 타고난 기질이나 취향이 닮은 데가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 오래 만나고 관계를 지속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정은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오래 못 만나면 벗을 향한 마음의 온도도 내려간다. 하지만 진정한 벗은 생각만으로도 어두운 구석에 빛이 들듯 마음이 훈훈해지고 환해진다. 우정이란 벗과 쌓은 두터운 정과 신뢰이고, 애틋함과 사랑의 감정이다. 우정은 이해, 공감, 친밀감이 그 바탕이다. 그것은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 우정은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키케로는 <우정론>에서 “우정은 찬란한 미덕이 빛을 내뿜고, 유사한 성질의 영혼이 애착심을 느낄 때 맺어지는 것”이라 하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은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라고 가슴에 깊이 새길 만한 명언을 남긴다.
사람은 누구라도 완벽하지 않다. 우리가 만나고 사귄 친구들도 그렇다. 애써 허물과 약점은 덮어주고 작은 실수는 눈감아 주는 사람, 아무 조건을 달지 않고 아량과 덕을 베푸는 사람이 친구다. 친구가 없는 자리에서 흠집이 될 만한 뒷말을 남에게 늘어놓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그들은 친구라는 가면을 쓰고 사람을 속이는 비루한 인격체에 지나지 않는다. 더러는 친구라는 관계를 이용해 감정을 흡혈귀같이 착취하는 사람도 있다. 제국주의가 식민지의 자산을 탈취하듯이 내 감정을 끊임없이 흡혈하는 사람은 곁에 두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기어코 나를 이롭게 하는 대신 삶의 평화와 안녕을 앗아갈 사람이다.
사랑이 광기와 시끄러움을 동반하는 데 반해 우정은 기척이 고요하고 담담하다. 우정엔 세상을 녹일 땡볕 같은 맹렬함은 없지만 달빛같이 다정하고 은은한 고요함이 있다. 살아가는데 마음의 등대가 되어줄 수 있을 친구가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세상에는 우정의 가치를 기리는 시가 많다. 그중 함석헌 선생의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만큼 고전적인 아취가 서린 시는 드물다.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그 뜻이 올곧고 아스라이 높아 감히 따르기 어려운 경지를 보여준다. 백 년 묵은 오동나무 같은 사람“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마음이 외로울 때야말로 믿을 만한 친구가 필요하다.
온 세상이 나와 등질 때조차 홀로 용기를 내서 나를 지지하고 제 어깨를 내주는 친구, 배가 침몰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구명대를 양보하는 우정보다 더 아름다운 우정이 또 있을까?
그대에게 백 년 묵은 오동나무같이 늘 변함없는 우정을 보여주는 친구가 있는가? 혹한에 피지만 서늘한 기쁨과 향기를 지닌 매화 같은 친구가 있는가? 사는 게 팍팍하고 힘들 때 찾아가 억울한 사정을 털어놓을 만한 친구가 있는가? 언제라도 반가워하고 밤새워 속 얘기를 나누며 곤경에 벗어날 궁리를 함께 할 친구가 있는가? 그런 친구와의 두터운 우정은 그대의 보람이자 기쁨이고, 그대의 삶을 윤택하게 해줄 훌륭한 자산이다. 그런 친구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그대의 인생이 헛되거나 실패했다고 말할 수 없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