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 비리 적발…정부, 209건 수사 의뢰

입력 2024-11-05 15:43
수정 2024-11-05 15:44


국고보조금이 투입된 탄소중립 설비 지원 사업에서 500건에 가까운 비리가 대거 적발됐다. 경쟁사와 짜고 입찰 건을 몰아주거나, 특수관계인을 입찰 들러리로 세워 특정 회사가 낙찰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부적정 사례가 다수였다.

국무조정실 정부 합동 부패예방추진단과 환경부는 5일 이런 내용의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 운영실태 합동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은 배출권 할당 대상 업체로 지정·고시된 업체가 탄소중립설비 도입 시 정부가 설비 투자비의 30∼70%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번 점검 대상은 2021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국고보조금 지급이 완료된 316개 탄소중립설비 지원 사업이었다.

점검 결과 총 496건의 부적정 사례가 적발됐다. 이 가운데 135건(1220억원)은 사업 수행자가 원하는 금액으로 사업비를 산정하기 위해 설비 업체들과 공모, 비교 견적서를 일괄 작성·제출하는 방식으로 한국환경공단의 사업비 산정 업무를 방해한 사례였다.

예컨대 설비업체 A사는 지원 업체로부터 공기압축기 견적서를 요청받자 B사와 C사에 입찰 들러리 역할을 맡게 했다. 이어 A사보다 높은 견적 금액을 작성하도록 했다. A사는 최저 견적 금액을 견적서에 적어 보조금 신청업체에 제출했다.

사업 수행자가 친인척이 운영하는 업체 등 특수 관계인을 입찰 들러리로 내세워 경쟁 입찰로 가장하거나 사전에 공모해 특정 업체에 유리하도록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사례는 74건(999억원)으로 조사됐다.

예를 들어 설비업체인 D·E·F사는 G사의 탄소중립 설비 관련 9건의 입찰에서 건별 낙찰자를 미리 결정했다. 이후 낙찰 예정자가 가장 낮은 금액으로 써내고, 나머지 들러리 업체는 그보다 높은 가액이나 사업비보다 높은 금액으로 번갈아 가며 써내는 방식으로 사전 내정 업체가 낙찰받도록 담합한 혐의를 받는다.

정부는 이처럼 업무·입찰 방해나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있는 사례 209건, 139명에 대해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는 미등록 업자의 전기·건설 공사 업무 수행, 분리 발주 대상인 전기 공사를 일괄 발주하는 등 법 위반 사례 140건, 116명에 대해서는 환경부를 통해 고발하기로 했다. 이 밖에 국고보조금 통합 관리 및 사업 운영 지침을 위반한 사례는 147건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지원 대상이 아닌 비용에 대한 보조금 등 초과 지급된 보조금 829만원을 환수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점검에서 적발된 위법·부적정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규정 등을 제·개정하는 등 제도 개선과 사후 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민간업체가 계약 당사자인 경우에도 입찰·계약 시 국가계약법을 준용하도록 하고, 보조 사업자인 환경공단이 적절한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할 계획이다.

또 사업비 산정 기준을 정할 때 민간 업체의 비교 견적에 더해 공인된 외부 기관의 설비 원가 적정성 검토를 추가해 담합을 방지하고, 탄소 배출 절감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이 컨설팅업체의 도움 없이도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