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는 실패를 용인하는 모험적인 연구개발(R&D)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편견을 한번 깨보고 싶습니다.”
K헬스미래추진단 초대 수장을 맡은 선경 단장(사진)이 4일 “독일, 캐나다 등 유수 선진국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한 모험적인 R&D를 성공시켜보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추진단은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실패를 용인하는 R&D’를 벤치마킹해 만든 ‘KARPA-H 프로젝트 추진단’의 새 이름이다. 오늘날 인터넷의 뼈대가 된 월드와이드웹(www), 모더나 코로나19 백신 등이 미국 DARPA식 R&D의 대표 성과다. 추진단은 혁신적인 R&D에 9년간 총사업비 1조1628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선 단장은 “정부가 주도한 R&D의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는 국민 정서와 실패를 수습할 여력이 DARPA식 R&D의 성공 요인”이라며 “우리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부 주도 R&D를 해보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정부 주도 R&D 과제의 달성률은 약 95%였다. 그는 “과제 달성에 실패하면 다음 과제 선정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성공을 전제로 한 ‘안전한’ 연구만 해왔다”며 “이런 분위기에선 도전적인 R&D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K헬스미래추진단은 과제 성공률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과제 성공률을 30~40%로 잡고, 실패해도 실패 자체를 쉬쉬하지 않고 명문화해 목적지로 가는 데이터로 삼겠다”고 말했다. 추진단의 프로젝트(한국형 arpa-h 프로젝트)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 받았다. 그는 “예타를 하면 4~6년이 허비돼 ‘퍼스트무버’가 되는 연구는 결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선정된 과제는 국민의 보건 안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백신 초장기 비축 기술, 고령화에 따른 근감소증 해결 등 10개다. 암 조기 진단 등 미정복 질환을 해결하기 위한 과제도 포함됐다. 해당 과제에 5년간 177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흉부외과 교수이자 과학자인 선 단장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R&D진흥본부장,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등 임상과 R&D 현장을 두루 거친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우리 과제가 기술 개발과 사업화 사이 ‘죽음의 계곡’을 잇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이우상/사진=이솔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