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 선물로 최고"…軍 장병들 PX서 쓸어담더니 '잭팟'

입력 2024-11-04 16:19
수정 2024-11-04 16:42


“내년엔 미국과 일본 양대 시장에서 큰 폭의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전력투구할 겁니다.”

이주호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52·사진)는 지난 1일 경기 성남 분당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올해 20% 수준인 전체 매출 대비 해외 비중을 내년엔 30%까지 높일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은 2000년 피부과 전문의인 안건영 박사가 창업한 중견 화장품 기업이다. 2003년 대표 더마코스메틱 브랜드인 ‘닥터지’를 론칭했다. 지난해 매출 1984억원, 영업이익 293억원을 기록했다.

이 대표는 창업주인 안 박사가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2021년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대림그룹(현 DL그룹) 등지서 20여년 간 근무한 재무·전략 전문가다. 2014년 안 박사 제안으로 고운세상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부사장으로 합류했다.

이 대표가 합류할 당시만 해도 고운세상은 ‘병원 화장품 회사’ 이미지가 강했다. 닥터지가 누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뷰티 브랜드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2016년 찾아왔다.

이 대표는 “닥터지의 대표 제품인 ‘블랙 스네일 크림’은 이전에 군 내에선 국군수도병원 군마트(PX)에서만 제한적으로 판매됐다”며 “장병들 사이에 ‘시중가 대비 훨씬 저렴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국 군부대 PX 입점 제안이 들어왔다”고 했다.

당시 고운세상에선 PX 입점에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PX에서 저렴하게 팔리는 화장품이라는 게 알려지면 브랜드 이미지 형성에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PX 입점은 장병은 물론 가족이나 친구 등에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입점을 관철시켰다.

PX 입점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2016년 202억원에 불과했던 고운세상 매출은 2017년 265억원, 2018년 992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2018년 병장 월급이 21만원에서 4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오르면서 PX 화장품 구매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난 덕택이다.

이 대표는 “블랙 스네일 크림은 광고도 거의 안 했는데 군 PX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3200만개 넘게 팔렸다”며 “피부과 처방에서 유래한 제품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지며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고 술회했다.


고운세상의 두 번째 성장 기회는 2021년 해외 진출에 나서면서 찾아왔다. 닥터지는 일본 3대 버라이어티숍인 로프트와 핸즈를 비롯해 플라자, 이온몰 등 8000개 이상 매장에 입점했다. 올해 3분기엔 큐텐재팬 최대 할인 행사인 ‘메가와리’서 ‘레드 블레미쉬 클리어 수딩 크림’ 등이 실시간 뷰티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베트남에서는 쇼피와 틱톡샵 등 온라인은 물론 왓슨스, 가디언 등 오프라인 1500개 매장에 입점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올해 3월 국내에 처음 선보인 브랜드인 ‘랩잇’이 5개월 만인 지난 8월 가디언 500개 매장에 동시 입점에 성공했다.

이 대표는 “올해 해외서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면서 매출이 전년 대비 16% 가량 늘어난 2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국에서는 최근 아마존에서 닥터지 제품 판매를 시작했는데 매달 두 배 이상씩 매출이 늘고 있다”고 했다.

또 이 대표는 “올해를 해외 진출 원년으로 삼아 앞으로 글로벌 사업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고 덧붙였다.

닥터지의 방향성은 ‘트렌디한 더마코스메틱 화장품’으로 잡았다. 이 대표는 “미국·유럽의 더마코스메틱 브랜드는 다소 재미없고 딱딱한 반면, 닥터지는 다른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협업)을 통해 트렌디한 모습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닥터지는 지난 6월 미국 월트디즈니와 협업해 ‘인사이드아웃2 한정 에디션’을 출시했다. ‘짱구는 못말려’ ‘카카오프렌즈’ 등과는 캐릭터 협업 상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