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캐나다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 포섬매치로 진행된 셋째날 7번홀(파3)에서 김주형(23)이 1.5m 파 퍼트를 성공시킨 뒤 공을 꺼내며 퍼터로 길이를 쟀다. '이정도 길이도 컨시드(다음 스트로크로 홀을 끝냈다고 인정하는 행동)를 안주냐'는 항의표시였다. 이 장면으로 김주형은 인터내셔널팀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매치플레이에서 짧은 퍼트에 대한 컨시드 여부는 전적으로 상대방의 고유 권한이다. 컨시드는 분명한 말이나 몸짓으로 그 뜻을 명백하게 전달해야 성립된다. 아무리 짧은 퍼트라도 상대방의 의사 표시가 없으면 스트로크해야한다. 때문에 짧은 거리의 컨시드 여부에 대해서는 종종 "룰대로 했다"와 "매너가 없다"는 주장이 맞선다.
매 홀마다 승부를 결정짓는 매치플레이에서 컨시드 여부는 심리전의 중요한 방법이다. 타이거 우즈는 이 방면의 달인이었다. 비교적 긴 거리 퍼트에 계속 컨시드를 주다가, 훨씬 짧은 퍼트를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책략을 썼다. 짧은 퍼트를 마무리하라니, 당하는 입장에서는 마음이 요동칠 수 있다.
경쟁이 더욱 치열한 국가대항전에서는 짧은 퍼트 컨시드를 둘러싼 해프닝이 유독 잦다. 2015년 미국과 유럽간 여성 골프 대결인 솔하임컵 포볼매치에서 앨리슨 리(미국)는 17번홀 그린에서 약 45cm 짧은 퍼트를 남겨두고 있었다. 상대팀이 모두 아무 말 없이 다음홀로 이동하자 컨시드했다고 생각하고 볼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가 "컨시드를 주지 않았다"고 항의하면서 그 홀에서 패배했고, 결국 매치에서도 졌다. 울분을 참지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앨리슨 리의 모습은 미국팀을 자극했고, 미국팀은 마지막날 싱글매치에서 4점차를 뒤집고 역전승했다. 페테르센은 대회 종료 뒤 사과를 해야했다.
승부보다 스포츠맨십을 선택한 사례도 있다. 1969년 미국과 유럽간 남자골프 대결인 라이더컵 마지막날 마지막 홀, 양팀 모두 15.5점으로 동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마지막 18번홀, 잭 니클라우스(미국)와 토니 재클린(영국) 모두 버디퍼트를 놓쳤다. 니클라우스의 2.5m 파 퍼트와 재클린의 1m 파 퍼트에 공동 우승, 혹은 한쪽의 우승이 달려있었다. 니클라우스는 파 퍼트를 성공한 뒤 재클린의 볼 마커를 집어올리며 컨시드했다. 마지막 매치까지 비기며 결국 그해 라이더컵은 무승부로 끝났다.
한번의 스트로크로 라이더컵의 향방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25살의 재클린의 파 퍼트는 아무리 짧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니클라우스는 상대에게 컨시드를 줬다. 승리보다 스포츠맨십을 선택한 니클라우스의 행동은 아직까지도 "세기의 컨시드"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 최진하 전 KLPGA 경기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