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기조연설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4’ 공급 일정을 6개월 앞당겨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곽노정 SK 하이닉스 CEO에게 확인 후 황 CEO에게 ‘한 번 해보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와 용량을 극대화한 제품이다. 일반 D램보다 한꺼번에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규모 연산이 필요한 AI 반도체에도 쓰인다. SK하이닉스는 이를 생산해 엔비디아에 공급 중이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세계 최초로 HBM 개발에 성공하며 지금까지 성능을 끌어올렸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시장의 '큰손' 고객인 엔비디아에 사실상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데, HBM3·HBM3E에 이어 맞춤형(커스텀) 제품인 HBM4(6세대)까지 SK하이닉스가 공급하기로 하면서 양사의 협력 관계가 더욱 끈끈해지는 모습이다. 차세대 제품 HBM4는 내년 하반기 양산해 엔비디아에 공급할 예정이다.
최 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최근 젠슨 황 CEO와 만났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젠슨 황 CEO는 뼛속까지 엔지니어인데 마치 한국인 같다"면서 "빨리빨리 일정을 앞당기길 원한다"고 말했다.
젠슨 황 CEO는 이날 영상 속 메시지를 통해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가 함께한 HBM 메모리를 통해 '무어의 법칙'을 뛰어넘는 진보를 지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만 파운드리 기업 TSMC의 웨이저자 CEO 역시 영상으로 깜짝 등장했다. SK하이닉스는 TSMC의 공정을 활용해 HBM을 생산하고 이를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삼각동맹을 이루고 있다.
웨이저자 CEO는 “SK하이닉스의 HBM이 오늘날의 데이터 집약적인 환경에서 AI 가속화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바로 이런 파트너십 정신이 나를 가장 설레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생태계 전반에 걸친 더 긴밀하고 깊은 협력만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 회장은 AI 발전을 위한 ‘협력’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직면할 난제를 언급하며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AI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보틀넥(Bottleneck·병목현상)이 있다”고 진단하고, ▲AI에 대한 투자를 회수할 ‘대표 사용 사례’(Killer Use Case)와 수익 모델 부재 ▲AI 가속기 및 반도체 공급 부족 ▲첨단 제조공정 설비(Capacity) 부족 ▲AI 인프라 가동에 소요되는 에너지(전력) 공급 문제 ▲양질의 데이터 확보 문제 등 5가지 보틀넥 해법에 대한 의견을 냈다.
특히 AI 기술을 위해 대규모 전력량을 마련하면서도 에너지 독립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저전력 반도체, 액침냉각, 유리기판 등 다양한 솔루션이 중요해진다고 언급했다. 최 회장은 “SK는 반도체부터 에너지, 데이터센터의 구축 운영과 서비스의 개발까지 가능한 전 세계에서 흔치 않은 기업”이라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