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나라 쿠웨이트가 더 뜨거워지고 있다. 축구 때문이다. 20년 만에 월드컵 최종 예선에 진출한 쿠웨이트는 다음 주 한국과 경기를 앞두고 설레고 있다. 지난 9월 이라크와 예선전에는 6만명의 관중이 모였다. 뜨거운 관심에 홍역을 치른 쿠웨이트는 다가올 한국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손흥민 등 한국 스타 방문을 기대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쿠웨이트의 첫 만남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4년 1월 22일, 4만5000t급 걸프 이탈리아나 호가 울산 남구 용연 앞바다에 나타났다. 쿠웨이트산 원유 33만 배럴을 실은 배가 한국 최초 원유 부이인 SK1 부이에 첫 번째로 연결됐다. 중동산 원유가 한국에 첫발을 디디는 순간이다. 국내 최초 정유시설에서 쿠웨이트산 원유가 사용됐고 우리 중화학공업 발전의 초석이 됐다. 이렇게 양국의 첫 화학적 결합이 시작했다.
쿠웨이트는 한국에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며 우리 경제 성장에 기여했고, 우리는 쿠웨이트 핵심 인프라 건설에 참여하며 협력의 시너지를 이뤘다. 1975년 한국기업이 쿠웨이트 건설 프로젝트에 최초 참여한 후 현재까지 489억달러를 수주했다. 한국의 해외 건설수주액 3위 국가다. 쿠웨이트 주요 간선도로, 교량, 항만, 정유시설, 해수담수화플랜트, 화력발전소 등 다양한 곳에 한국의 손길이 닿았다.
하지만 양국 간의 교류는 과거에 비해 양적, 질적으로 줄어 들었다 1980년대 1만3000명에 달하던 한인 교민은 현재 5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신규 발주 감소와 사업 완공 등으로 많은 기업이 철수한 탓이다. 현지인으로부터 요즘 쿠웨이트에서 한국인을 보기 어렵다는 말을 종종 들을 정도다. 동시에 쿠웨이트 진출을 희망하는 혁신 기업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도 자주 받는다. 도로건설 등 쿠웨이트에서 발주되는 노동 집약적인 EPC(설계·조달·시공) 사업은 중국 등과 저가 입찰 경쟁으로 더 이상 우리에게 매력적이지 않으며, 기술 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필연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반증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본 쿠웨이트 경제는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 잠시 움츠린 듯하다. 저탄소, 인공지능(AI)과 같은 글로벌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석유 의존형 경제 탈피 고민이 한창이다. 2035년까지 역내 금융 및 상업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야심 찬 ‘비전 2035’ 전략을 바탕으로 산업구조 전환이 추진되고 있다. 국부펀드 규모 세계 5위, 자산가치 9800억달러에 달하는 ‘쿠웨이트 미래세대기금’은 1953년 설립 이후 인출 없이 매년 신규 자금을 적립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스마트시티, 우주산업 등 신규 분야 구상도 구체화되고 있다. 최근 쿠웨이트 북부 샤가야 재생에너지 단지에 15억달러 규모 1100MW(메가와트) 태양광 입찰이 진행됐고, 우리 기업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쿠웨이트 최초 우주센터가 창설됐다. UAE 최초 인공위성 두바이샛 1호가 한국 기술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고무적이다. 또 곧 발효될 한-GCC 자유무역협정(FTA)은 양국 간 상품 및 서비스 규제 장벽도 낮출 것이다. 이런 기회 속에서 한국은 쿠웨이트 미래산업 전환을 돕는 중요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모든 쿠웨이트 남성의 저녁 사교 모임인 디와니야(Dewaniya)에서 가장 큰 화두는 이달 중순에 예정된 한국 축구가 될 것이다. 스포츠가 만들어 낸 이 특별한 순간이 양국의 깊은 경제적, 문화적 이해로 이어져 미래지향적인 파트너십으로 발전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