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01일 14:5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금융감독원이 고려아연의 '폭탄 유증' 관련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공개매수 파트너였던 베인캐피탈과의 사전 공모 여부도 조사의 핵심으로 거론된다. 감독당국의 조사 결과 최 회장 측의 '부정거래' 혐의가 입증된다면 공동행위자인 베인캐피탈도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 회장이 베인캐피탈 모르게 유상증자를 결정했어도 문제다. 해당 사안을 한국사무소가 글로벌 투자심의위원회에 보고하지 않은 채 의사결정을 내렸다면 주요 인력들에 대한 대규모 문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감독당국 수사망에 오르면서 베인캐피탈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간 공고했던 파트너십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어 주목된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고려아연이 기습 발표한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에 부정거래 소지가 있는지 파악에 나섰다. 공개매수와 유상증자 주관을 맡은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현장 검사도 착수됐다. 공개매수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기 유증을 위한 실사 작업에 착수하면서 공개매수신고서를 허위 기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전날 기자간담회를 열어 "기존 공개매수신고서에 중대한 사항이 빠진 것이고 부정거래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 주목하는 건 베인캐피탈과 최 회장 측간 주주간계약 체결 과정에서 최 회장이 당시 과도한 수준의 담보를 베인 측에 제공한 점이다. 베인캐피탈 측은 고려아연이 진행한 주당 89만원의 자사주 공개매수에 총 2592억원을 투입해 지분 1,4%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한투에서 빌린 인수금융 2073억원에 대한 담보로 자신들의 보유 지분 1.4%는 물론 본인 및 일가가 보유한 주식 5.1%를 담보로 제공했다. 공개매수가격인 주당 89만원 기준으로 총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최 회장이 채무에 대해 사실상 지급보증을 지면서 베인캐피탈은 차입금에 대한 담보유지비율 유지 의무도 따로 부과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상당한 수량의 주식이 사전에 베인캐피탈에 담보로 잡힌 만큼 베인캐피탈이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공개매수 직후 대규모 유증으로 담보가치가 하락할 것을 반영해 최 회장 일가의 주식 상당수를 담보로 잡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양 측의 주주간계약 시점과 조건을 들여다볼 가능성도 있다.
자본시장법 전문 변호사는 "고려아연에게 허위 기재에 따른 자본시장법 위반이 성립된다면 베인캐피탈도 부정거래에 방조한 혐의가 있게 된다"며 "만약 폭탄 유증 사실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숨기고 공개매수에 가담했다면 자본시장법상 위계에 의한 부정행위로 처벌 대상이 되고 주주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까지 물게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대형 PEF 운용사로 컴플라이언스 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베인캐피탈이 알고도 공개매수에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법적 리스크를 우려해 투심위에서 제동이 걸렸을 것이란 것이다.
만약 전에 고지 받지 않았다면 최 회장과 베인캐피탈 사이 공고했던 파트너십에도 큰 균열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전 공모 여부와 관계없이 공개매수신고서를 공동으로 제출한 이상 허위기재에 따른 공동 책임도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이 많다. 베인캐피탈은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직접 합류하면서 최 회장의 강력한 우군이 돼왔다.
IB업계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결론이 난다면 '한 배'를 탄 베인캐피탈에게도 책임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사전에 알고 범법자가 되느냐, 모른 채 당한 피해자가 되느냐 선택지에 놓여진 셈"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 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