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쓰는 모델이 네 번째 스마트폰이야. 노인들도 한번 익히면 요긴하게 잘 쓴다니까. 이제는 스마트폰 없으면 지방으로 놀러 가거나 누구한테 돈도 못 부쳐."
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80대 윤모 씨는 "건강 관리에 필수"라며 자신이 차고 있는 스마트 워치를 내보였다. 그는 워치를 이용해 혈압과 걸음 수를 수시로 확인한다고 한다. 윤씨는 "나이 들었다고 편하게 살지 말란 법 있나"라며 "집에만 가면 스마트폰이랑 워치부터 충전한다"고 웃음을 보였다.
노후에도 적극적인 사회 활동과 소비생활을 즐기는 노인들을 뜻하는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들이 디지털 장벽마저 허물고 있다. 이들은 키오스크, 스마트폰 등 각종 전자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면서 "배워야 젊어진다"고 입을 모은다.경로당 노인들도 '스마트 워치'로 건강 관리
'키오스크'로 패스트푸드도 능숙하게 주문지난달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노인들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2020년 56.4%에서 지난해 76.6%로 증가했다. 컴퓨터 보급률도 같은 기간 12.9%에서 20.6%로 늘어났다.
전자기기 보급 확대에도 여전히 많은 노인들이 '디지털 소외'를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점차 많은 이들이 각종 디지털 기기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노후에도 사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는 노인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30여년째 동네 사람들과 봉사 모임을 이어오고 있는 윤씨 역시 디지털 기기 사용에 능한 대표적인 액티브 시니어다. 일상 속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 지도, 은행 앱 등도 모두 깔려 있었다.
윤씨는 "자식들이 스마트폰 사줘도 제대로 쓰질 못하는 노인들이 많지 않나. 예전에 쓰던 휴대전화처럼 그냥 쓸 거면 그 비싼 걸 왜 들고 다니나"며 "지금도 쓸만한 앱이 있나 주변에 물어보고, 사용법을 배우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요긴하게 사용 중인 앱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코레일 앱을 꼽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충남 보령 성주산에서 모임을 갖는데, 직접 기차표를 끊기 위해서다. 윤씨는 "다른 모임 사람들은 자식이 끊어준다는 데 나는 직접 한다"며 "지난달에도 그렇게 보령을 다녀왔다"고 전했다.
2주 후 아들이 거주하는 경기도 의정부로 가 새 스마트폰을 구매하기로 했다는 80대 김모 씨는 "가장 애용하는 앱은 지도 앱"이라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처음엔 전화기가 전화 잘 걸어지고, 오는 전화 잘 받아지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지금은 아들이 알려준 대로 해당 앱을 잘 쓰고 있다. 일단 켜서 나침반 표시만 누르면 되고 별거 없더라"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부쩍 늘어난 키오스크 역시 디지털 활용에 적극적인 액티브 시니어들에겐 편리한 전자기기 중 하나일 뿐이다.
70대 이모 씨는 얼마 전 경로당에서 진행한 키오스크 교육을 받았다. 그는 "괜히 두려웠는데 이렇게 쉬운지 몰랐다"고 말하며 이날 직접 경로당 인근의 한 햄버거 프랜차이즈 지점에서 능숙하게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문 과정에서 추가 옵션을 선택하는 창이 여러 차례 떴지만 이씨는 당황하지 않고 원하는 옵션으로 소고기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주문했다. 그는 "원래 키오스크 앞에 서면 사용할 줄 모르는 줄 알고 직원이 쪼르르 달려온다"며 "그럴 때 당당하게 '괜찮다'고 하면 괜히 뿌듯하다"고 전했다.
노인층에서도 적극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현재 여러 지자체와 교육 기관에선 노인들을 위한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을 점차 늘리는 추세다. 영등포구는 이달 말까지 구내 노인정 43곳에 디지털 교육을 제공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며, 지난달 호서대는 자교 교수들이 직접 참여하는 노인 대상 디지털 수업을 진행했다.
송재룡 경희대 특임교수(사회학)는 "디지털 사회의 구성원은 스스로가 의도적으로 '디지털 소외'를 택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라도 디지털 공간을 접할 수밖에 없다. 연령, 계층, 직업별로 신기술을 수용하는 정도와 속도에 차이만 있을 뿐"이라며 "노인들도 젊은 세대처럼 편리한 일상을 추구한다는 점은 똑같으므로 충분한 교육 여건만 갖춰지면 노인층의 디지털 소외 현상은 더 빠르게 해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