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로앤비즈가 선보이는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안나 카레니나부터 주홍글씨까지..." 문학과 예술의 영원한 소재였던 불륜은 현대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화제가 됩니다. 최태원-노소영 부부의 이혼 사건이나 박지윤-최동석 부부의 쌍방 상간 소송 등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스캔들'의 이면에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최근 방영된 MBN '한번쯤 이혼할 결심'에 출연한 요리연구가 이혜정 씨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의 과거 불륜으로 인한 아픔을 토로했습니다. 간통죄 폐지 9년...위자료 현실은과거에는 간통죄 고소를 통해 형사처벌이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5년 2년 헌법재판소가 간통한 기혼자와 상간(相姦)한 자를 2년 이하 징역에 처하게 한 형법 241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현행법 아래에서는 민사상 위자료 청구가 유일한 법적 구제 수단입니다.
최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상간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1심 판결로 20억 원의 위자료가 인정돼 화제가 됐습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입니다. 현실에서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는 이혼하지 않는 경우 2000만~3000만원,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에도 3000만~5000만원 수준에 그칩니다. 부정행위의 정도가 단기간이고 경하다고 평가되는 경우 1000만원 정도만 인정된 사례도 있습니다.
더욱 문제는 이러한 위자료 수준이 20년 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가상승률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법원에는 불륜에 대한 위자료에 대한 구체적인 산정 기준 등이 명확히 마련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혼인 파탄의 원인과 책임 정도, 혼인지속기간 등을 고려해 간혹 1억~3억 원의 위자료가 인정되기도 하지만, 이 역시 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위자료의 함정: 배우자와 상간자의 공동부담
불륜 관련 위자료 소송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불륜이 쌍방의 행위이기 때문에, 위자료는 상간자와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가 공동으로 부담합니다. 예컨대 상간자에게 3000만원의 위자료가 인정되면, 배우자도 1500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피해 배우자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깁니다. 상간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더라도 상간자가 자신의 배우자에게 위자료의 반을 부담하라고 구상청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턱없이 부족한 위자료가 절반으로 줄어들 뿐 아니라, 불륜 배우자를 용서하고 가정을 지키려다가도 구상청구 과정에서 받는 정신적 고통으로 결국 이혼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간통죄가 폐지된 현 상황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상간자 입장에서도 경제적으로 위자료 부담이 크지 않으니 부정행위에 대한 경각심 없이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 역시 많이 접합니다. 필자가 많은 피해자분을 만나며 통감하는 것은 피해의 극복은 본질적으로 피해자 개인의 몫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었습니다.
법원의 변화 조짐
다행스럽게도 2023년 9월부터 법원 내에 '손해배상소송 커뮤니티'가 출범했습니다.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현행 손해배상 실무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인식이 확산한 결과입니다. 실무적인 연구와 더불어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관해 대안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신적 고통의 객관적 가치를 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위자료는 단순한 손해 배상을 넘어 피해자의 위로와 가해자에 대한 제재라는 의미도 담아야 합니다. 물가상승은 물론 변화한 사회적 가치관도 반영해야 합니다.
피해의 극복은 결국 개인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적어도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법적 결과를 제시할 의무가 있습니다. 현재의 위자료 산정 기준이 그러한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볼 때입니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 I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제48회 사법시험 합격, 제40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IBK기업은행,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법무팀장으로 재직하며 다양한 법률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후 故 구하라 유족 법률대리인으로 '구하라법' 입법 청원을 주도하여 2021년 법무부 장관상을 받았다.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동물자유연대 등기이사이자 국민권익위원회 행정심판 통합자문단 보상·보험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다수 TV 프로그램에 법률 자문을 하고 있다. 대학 동기이자 법무법인 존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윤지상 변호사와 함께 유튜브 채널 '상속언박싱'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