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시절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하면서 발생한 7000억여원의 손실을 누가 떠안을지를 두고 정부와 공기업이 법적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사업이 재개돼 ‘탈원전 대못’을 뽑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잘못된 탈원전 정책의 청구서가 주인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부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대형 로펌 두 곳에서 월성 1호기 중단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이 입은 손실액 7727억원을 보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률 조언을 받았다.
한수원은 2018년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로드맵’ 정책에 따라 월성 1호기 폐쇄를 결정하면서 산업부에 손실 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이에 산업부는 “적법하고 정당한 지출 비용이라면 여유 재원으로 보전하겠다”는 내용으로 회신했고, 한수원은 이를 믿고 같은 해 월성 1호기를 폐쇄하고 신규 원전 4기 건설을 모두 백지화했다. 이후 한수원은 2022년 비용 보전 신청을 접수했지만 산업부는 2년간 19차례 보완 지시를 하며 보전을 미뤄왔다.
산업부는 이후 지급 보류의 적법성에 대한 법률 자문을 대형 로펌 두 곳에 요청했다. 이에 로펌 측은 해당 비용을 ‘손실 보상’이 아니라 ‘보조금’으로 정의했다. “사업자가 원전 폐쇄를 자발적으로 결정하고, 정부는 이를 장려하기 위해 소요 비용을 보전해주기로 한 제도”라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한수원이 원전 조기 폐쇄로 입은 7727억원의 손실을 산업부가 반드시 보전해줘야 하는 강제성은 없다는 취지다.
로펌의 의견서에는 산업부가 비용을 보전해주지 않으면 한수원이 국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경우 원전 중단 책임자에게 해당 배상금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원전을 중단하는 대신 7000여억원을 갚아주겠다”던 정부의 약속이 ‘공수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산업부는 비용을 보전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비용 보전은 ‘적법한 지출’에 대해 할 수 있는데, 월성 1호기 폐쇄의 적법성 여부를 따지는 재판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판단을 보류한 것”이라며 “감사원으로부터 사전 컨설팅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 결과에 따라 ‘탈원전 청구서 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산업부가 해당 자문을 근거로 비용 보전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수원도 에너지 공기업이어서 국민 세금으로 해당 손실을 메워야 하는 건 불가피하다.
나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잘못된 정치 이념으로 주도한 탈원전 정책의 손해를 국민이 결국은 떠안게 된 것”이라며 “끝까지 책임을 규명해 국가 손실을 빠르게 보전하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소람/황정환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