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31일 16:0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고려아연의 깜짝 유상증자 소식에 기업 법무를 다루는 대형 로펌 내 변호사들도 "너무 무모한 카드"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자본시장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대형 로펌 내 자본시장 담당자들도 이번 대규모 유상증자가 합법 여부 이전에 자본시장의 질서를 통째로 흔든 전례없는 일이 될 것이라며 사안을 지켜보고 있다.
일각에선 고려아연이 비교적 적은 잡음을 일으키면서도 경영권을 굳힐 수 있었던 자사주 활용방안 대신 대규모 유상증자를 택한 점을 두고 의구심도 나온다. 경영진과 이사진이 자신들이 외견상 비교적 법적 리스크에서 안전해보이는 유상증자안을 택했지만 투자자들의 민심 폭발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금융감독원까지 움직였다는 점에서 '패착'이었다는 평가가 짙다. 금감원도 이날 "위법행위가 확인되는 경우 고려아연뿐 아니라 관련 증권사에 대해서도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며 고강도 조사를 예고했다. 분쟁 지켜보단 금감원 '전격 개입'
31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영풍과의 분쟁 때부터 김앤장법률사무소를 고용해 대응 전략을 짰다. 영풍과 벌인 서린상사 경영권 분쟁에서부터 김앤장은 고려아연에 법률자문을 독점 제공해왔다.
30일 이사회 직전까지 고려아연 측이 이사회를 열어 보유 중인 자사주 2.4% 중 1.4%를 우리사주조합에 넘겨 의결권을 부활시키는 방안이 유력히 검토돼 왔다. MBK와 영풍 연합도 해당 시나리오를 유력한 안으로 보고 대응 준비에 나섰지만 내부에선 "밀어붙이면 당장 막아세울 시간이 없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 예상을 깨고 고려아연 측이 2조5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유상증자안을 발표했다. 청약 제한을 둬 MBK 연합을 묶어두면서 우리사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윤범 회장에 유리해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악수'를 뒀다는 평가가 짙다. 법조계에선 최 고려아연 회장 및 경영진이 법률 자문사의 만류에도 강행했을 것이란 관측과 김앤장이 이 카드를 먼저 만들어 제시했을 것이란 의견이 팽팽히 나뉘고 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고려아연 경영진 입장에선 자사주 활용은 시가와 직원에 분배하는 가격 차이가 숫자로 너무 드러나다보니까 경영진에게 배임 리스크가 번질 것이라고 우려했을 수도 있다"며 "유상증자 방식은 기존 주주들의 반발이 있더라도 당장 배임 우려는 크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이번 유상증자가 고려아연 분쟁 과정에서 중립 입장을 강조해온 금융감독원을 움직이게 한 트리거가 된 점을 가장 큰 패착으로 꼽는다. 이날 금감원은 유상증자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현장 조사에도 착수했다. 최 회장 측과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이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하던 중 유상증자를 준비했다는 점과 공개매수 신고서를 통해서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밝히지 않아 주주에 피해를 끼쳤다는 혐의를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에선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형사사건으로 번질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금감원도 이날 고려아연 측이 고의로 유상증자 추진을 숨겼을 경우 형사처벌 가능성까지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고려아연 이사회가 공개매수 이후 유상증자로 이어지는 계획을 모두 알고도 공개매수신고서에 이런 중대한 내용을 누락했다면 부정거래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함 부원장은 “유상증자를 위해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대한 정정요구와 별개로 불법 행위가 발견되면 형사 처리가 이뤄지도록 수사 기관에 먼저 이첩하겠다”고 했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도 "경영진이 배임 위험을 지느냐 시장에 풍파를 일으키느냐 두 결정 사이에서 후자를 택한 것"이라며 "하지만 금감원 등 당국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사안을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패착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뻔히보이는 '대형 리스크'" 김앤장 구조 설계했나 말렸나
법조계에선 국내 최강의 경영권 방어 팀을 갖춘 김앤장이 고려아연 측의 이번 유상증자 안을 막아세우지 못한 점에도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이번 분쟁의 핵심 '키 맨'은 고창현 변호사와 조현덕 변호사다. 배우 고창석씨의 친형으로도 알려진 고 변호사는 경영권 분쟁과 기업 법무 분야에서 김앤장 뿐 아니라 국내 최고참급 인사로 꼽힌다. 최근에는 하이브를 대리해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와의 분쟁 과정을 자문하고 있다. 조 변호사도 넓은 재계 네트워크와 사교성을 바탕으로 국내 대기업 오너들이 가장 신뢰하고 자주 찾는 변호사로 꼽힌다. 고객의 요청이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해결해내는 '공격성'이 강한 변호사로 유명세를 떨쳤다.
로펌 업계에선 김앤장이 고 변호사와 조 변호사를 이례적으로 한 사건에 같이 투입한 사례를 두고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비교적 차분하고 논란을 일으키는 것을 피하려는 고 변호사의 성향과 공격적인 성향의 조 변호사간 호흡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에서다. 무엇보다 고 변호사와 조 변호사 모두 김앤장 내에서도 수익성 측면에서 1, 2위를 다투는 변호사인만큼 한 데 투입하는 게 수익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법조계에선 김앤장 최고의 변호사들이 투입됐음에도 공개매수신고서와 증권신고서 제출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놀라고 있다.
한 변호사는 "자사주 공개매수 가처분 소송에서 김앤장 측이 자기주식 공개매수가 회사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을 어필했고 그 부분을 법원이 받아들였다"면서 "공개매수 기간 중에 초대형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준비하고 있었다면 당시 가처분 소송에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