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맞아?…샤넬·루이비통 '초미니백' 줄줄이 내놓는 이유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입력 2024-10-31 11:22
수정 2024-10-31 16:21

샤넬 WOC, 루이비통 포쉐트 펠리시, 디올 데일리 체인 파우치, 셀린느 월렛 온 체인…. 명품 브랜드들이 내놓은 이들 핸드백은 지갑인지 파우치인지 가방인지 헷갈릴 정도다. 휴대폰이나 립스틱, 신용카드, 현금 정도만 들어갈 만큼 작다. 통상 패션업계에선 ‘초미니백’이나 ‘마이크로 미니백’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럭셔리 브랜드들이 마이크로 미니백 라인업을 확대하는 추세다. 버버리는 최근 200만원(약 1500달러 미만) 이하 제품 라인업(공식 홈페이지 기준)을 20개까지 늘렸다. 지난해 초만 해도 라인업이 6개에 불과했지만 크게 확대했다. 100만원 미만 제품(96만원·체크드로스트링파우치)도 나오면서 엔트리급 제품 가격대가 확 낮아졌다.

구찌도 비슷한 가격대에 주력 상품을 내놓고 있다. 구찌는 이 가격대에서 27개 가방 제품군을 출시했다. 가장 저렴한 편인 오피디아 미니백(109만원)은 100만원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가격 접근성을 끌어올려 실적을 방어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이 같은 트렌드가 중산층 고객을 겨냥한 움직임이라 본다. 가격을 낮추고 싶어도 브랜드 가치 유지를 위해 쉽게 인하하기 어려운 브랜드들이 엔트리급 모델을 대거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럭셔리 회사들이 매출의 약 70% 가량을 중산층 고객들이 떠받치고 있다고 추산하는데, 최근 이 소비자군에서 급격한 수요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통계를 보면 전세계 명품 구매의 절반 이상이 2000유로(약 300만원) 미만 제품에서 나온다. 이 가격대에서 명품을 구매하는 이들이 약 3억3000만명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그런데 명품 브랜드들이 제품 가격을 지나치게 올리면서 중산층 고객이 이탈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명품 브랜드들이 호황을 누리자 엔트리급 가격 하한선을 끌어올린 영향이 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10년전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던 모노그램 백이 너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디자인을 약간 변형해 더 값비싼 제품으로 전환한 바 있다. 실제 루이비통은 2014년 핸드백 제품의 절반 이상을 1500유로(약 224만원) 미만으로 내놨지만, 최근엔 이 가격대 제품 비중을 5분의 1까지 줄였다.

구찌도 전체 제품의 3분의 1가량에 해당하던 엔트리급 모델 비중을 2%까지 축소했다. 하이엔드 시장에 진출하려는 포석이다. 영국 HSBC는 명품 제품이 평균적으로 2019년보다 최근 55% 더 비싸졌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엔트리급 모델 없이 중국 시장 등에서 매출을 낼 수 있었지만, 최근엔 고객들이 이탈한 상황이다. 실적 하락세가 뚜렷한 명품 기업들 대부분이 중산층 고객 비중이 높던 브랜드들이란 게 이를 뒷받침한다.

구찌를 소유한 케링그룹은 올해 실적이 작년보다 반토막 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케링에 따르면 이 그룹의 영업이익은 핵심 브랜드 구찌가 크게 부진하면서 1년 전의 47억5000만유로(7조801억원)에서 올해 25억유로(3조 7267억원)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이 예상이 현실화하면 케링은 8년 만에 영업이익이 최저 수준을 기록하게 된다. 명품 소비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앞서 LVMH도 지난주 3분기 실적 발표에서 팬데믹 이후 최악 실적을 기록하면서 충격을 줬다. 루이비통, 디올 등이 포함된 최대 사업부인 패션·가죽 제품 매출이 코로나19 이후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