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매수신고서에 '유증 폭탄' 계획 숨긴 최윤범 회장, 자본시장법 위반 가능성

입력 2024-10-31 09:18
수정 2024-10-31 09:40
이 기사는 10월 31일 09:1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조5000억원 규모의 기습 '유상증자 폭탄'을 날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하던 중 유상증자를 준비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개매수 신고서를 통해서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밝히지 않은 만큼 자본시장법 위반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융감독원도 최 회장 측의 갑작스러운 공모 유상증자 결정을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보고,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면밀하게 검토하기로 했다.

3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번 고려아연 일반공모 유상증자의 주관사를 맡은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14일부터 실사 작업에 착수했다. 14일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점이다. 최 회장이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대규모 유상증자를 계획했다는 얘기다.

업계에선 미래에셋증권이 지난 14일 실사 작업에 착수했다면 최 회장 측이 실제로 유상증자를 기획하기 시작한 시점은 그보다 이전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문제는 최 회장 측이 이런 계획을 공시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 회장 측은 지난 11일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가를 인상하며 제출한 정정 공개매수신고서에 "공개매수 이후 회사 재무구조에 변경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장래계획을 수립하고 있지 않다"고 명시했다. 이 정정 신고서를 제출하는 시점에 대규모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면 자본시장법상 부정 거래이자 공개매수신고서 허위 기재로 볼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정정 신고서를 제출한 시점 이후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계획했더라도 추가 정정 신고서를 통해 이런 사실을 명확히 밝혔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는 고려아연 재무구조를 심각하게 뒤흔드는 결정"이라며 "공개매수 기간 이를 이미 준비하고 있으면서도 알리지 않았다면 주주 기망 의도가 짙다"고 꼬집었다.

최 회장 측이 공개매수신고서를 통해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밝히지 않으면서 실제 주주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최 회장 측이 만약 주당 67만원에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할 계획이 있다고 사전에 알렸다면 더 많은 주주들이 지난 4일부터 23일까지 고려아연과 베인캐피탈이 진행한 자사주 공개매수에 응하는 방안을 택했을 수도 있다. 대규모 유상증자로 주가가 폭락하기 전에 공개매수에 응해 주당 89만원에 팔고 나오는 게 낫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상 공개매수신고서에 중요사항을 거짓 기재하거나 이를 표시하지 않아 주주가 손해를 입은 경우에는 공개매수자에게 손해배상 책임도 있다.

업계에선 금융감독원의 조치를 주목하고 있다. 대규모 유상증자가 시장의 혼란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자본시장법 위반 가능성이 드러난 만큼 일단 유상증자 계획에 제동을 걸고 관련 조사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이 최 회장 측이 유상증자를 위해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반려하고 정정을 요구하면 최 회장 측의 의결권 확보 계획엔 차질이 빚어진다.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발행되는 신주의 상장예정일은 오는 12월 18일이다. 금감원 반려로 이 일정이 늦춰지면 신주 상장예정일이 해를 넘길 수도 있다. 이 경우 내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행 신주에는 의결권이 없다. 주주명부가 올해 말에 확정되기 때문이다. 주총 결의를 통해 정관을 변경하면 주주명부 폐쇄일을 변경할 수 있지만 정관 변경은 상법상 특별 결의 사항이라 출석 주주 의결권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과반 지분도 확보하지 못한 최 회장 측 입장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박종관/차준호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