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공채를 줄이고 수시 채용을 늘리는 기업들의 인재 채용 방식 변화가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정부 안팎에서 커져 가고 있다. 높아진 '취업 문턱'에 청년들의 취업이 늦어지고, 나아가 결혼·출산 시점도 늦춰지면서 구조적으로 아이를 덜 낳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30일 제5차 인구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저출산의 구조적 요인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엔 주형환 저고위 부위원장 주재로, 유혜미 대통령실 저출생대응수석, 최슬기 저고위 상임위원 등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선 최근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정기 공채의 감소와 수시 채용 증가 등 채용 방식의 변화가 도마에 올랐다.
저고위에 따르면 일부 위원은 "이 같은 채용 방식의 변화가 청년 세대의 좋은 일자리 진입 기회를 줄이고, 학교·지역·성별 등의 다양성을 낮추는 측면이 있다"며 "사회 초년생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초혼 연령은 남성과 여성이 각각 2013년 32.2세와 29.6세에서 2023년 34세와 31.5세로 늦춰졌다. 저출산으로 청년 세대 자체는 줄어들고 있음에도 취업 문턱이 높아지다보니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공공 부문이나 대기업 일자리를 잡기 위한 준비 기간이 늘어나는 현재의 상황이 청년의 사회 진출 시점을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뿐 아니라 정부는 최근 지속적으로 기업들의 정기 공채 축소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담은 메시지를 내고 있다.
주형환 저고위 부위원장은 지난 27일 청년 100여명과의 저출산 대책 토론회에서 "공채 기회를 늘려 줬으면 좋겠다는 것을 경제 단체와 기업에 계속 건의하고 있다"며 "동시에 입직 연령을 낮출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고위가 지난 21일 '청년층 조기 사회진출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연 제4차 인구전략 공동포럼에서도 기업들의 정기 공채 감소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신입사원 공채를 빠르게 줄여가고 있다. 국내 4대 그룹 중 신입사원 공채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삼성 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들의 전체 채용 공고 중 공채 비중은 35.8%에 불과했다. 경력이 없는 신입 채용의 비중은 2019년 47%에서 지난해 40.3%로 낮아졌다.
채용 방식은 전적으로 기업들의 경영상 선택인만큼 정부의 정책적 개입 여지는 크지 않다. 저고위가 토론회 등에서 연구자나 청년층 등 정책 대상자의 입을 빌려 메시지를 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점을 감안한 행보로 풀이된다.
30일 인구비상대책회의에서 한국노동연구원은 고졸자, 청년 니트 등 저학력·저숙련 취약 청년들에 대한 직업 능력 개발 기회 및 고용 서비스 제공, 조기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에 대한 일·학생 병행제도, 계약학과 확대 등을 청년층 조기 사회진출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